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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백 년 - 이탈리아 문학과 일본의 근대

번역 백년

by trans2be 2022. 5. 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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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가와시마 히데아키(河島英昭)
출처: 『飜譯百年』, 大修館書店, 2000, pp.66~84.

   
 

         목  차

Ⅰ. 근대 일본의 번역
Ⅱ. 이탈리아 문학의 번역
Ⅲ. 번역이란 무엇인가
Ⅳ. 「신곡」 번역의 예
Ⅴ.  단테의 '어두운 수풀'
Ⅵ. 「군주론」의 번역

 

河島英昭
필자의 마지막 연구서 「이탈리아 유태인의 풍경」

 

Ⅰ. 근대 일본의 번역

  오늘의 주제는 이탈리아 문학의 번역입니다만, 번역 자체에 관해 생각할 때 몇 가지 기본적인 자료를 일본어의 번역사(飜譯史)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대학(도쿄 외국어 대학-역자 주) 학생들에게 처음 이탈리아어를 가르쳤을 무렵부터 늘상 해온 말이 있습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특히 이탈리아어처럼 일본어로 된 사전도 문법책도 그다지 잘 구비되지 않은, 접근하기 어려운 외국어를 공부할 경우 참고가 되는 것으로, 오래되긴 했습니다만 『란가쿠고토하지메(蘭學事始)』(이하 '난학사시'로 표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스기타 겐바쿠(杉田玄白, 1733~1817)가 저술한 것인데요, 이 스기타 겐바쿠의 난학사시는 이와나미 문고(岩波文庫)에 분명 출간되어 있을 겁니다. 이는 일본어로 된 문헌 가운데 번역이라든지 외국 문학, 또는 외국 문물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것들을 소개하면서 대단히 기본적인 자신의 각오를 쓴 것인데, 제가 드릴 말씀은 물론이거니와 이 스기타 겐바쿠의 난학사시를 하룻밤 내서 읽어보시는 편이 모든 분을 위해서 유익한 면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께는 꼭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 난학사시』의 표제

  그 외에 얼마간 정리되어 있는 것으로 일본 근대 사상 대계제15권인 번역의 사상(翻訳の思想)(東京 : 岩波書店, 1991)이 있습니다. 비교적 두툼한 책으로 가토 슈이치(加藤周一)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真男)가 편찬한 것입니다. 이 책 속에는 초창기 외국어 작품을 번역할 때의 고통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마음 자세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을 여럿 모아놓은 것이니 관심 있는 분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보면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초기에 걸쳐 예컨대 「자유」라든가 「권리」, 「의무」 이런 단어를, 즉 그때까지 일본에 없던 단어를 일본어로 번역할 때에 초창기 인물들이 어지간히 고생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고생담 등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미츠쿠리 겐보(箕作阮甫, 1799~1863)라는 난학자였습니다. 그의 손자에 해당할 것 같은데요, 미츠쿠리 린쇼(箕作麟祥, 1846~1897)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권리」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일본어로 바꾸었을 때는 여러 가지 중국 작품을 사용했다는군요. 순자(荀子)에서 「권리(權利)」라는 단어를 끌어다 「right」의 번역어로 썼다는 것. 또 「의무(義務)」라는 단어를 고안해낼 때의 고심 등이 담겨 있습니다. 또 문학과 관련해서는 모리타 시겐(森田思軒, 1861~1897)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모리타 시겐의 번역에 대한 마음가짐이라 할 만한 것이 수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 역시도 읽어보시면 그런대로 도움이랄까, 참고 되는 바가 있는 몇 안 되는 번역 관련 문헌 가운데 하나입니다.


Ⅱ. 이탈리아 문학의 번역 

  그런데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초기에 걸쳐서 이탈리아어 문헌이라는 것은 일본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직접적으로는 말이죠. 이 역시도 예전에 조사한 바가 있습니다만, 특히 이탈리아 문학에 관해서는 영어 혹은 독일어로부터, 그 이후에는 프랑스어로부터 말하자면 중역되어 일본에 소개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신 이름으로 말한다면 우에다 빈(上田敏, 1874~1916)이 편역한 카이초온(海潮音)(1905, 이하 해조음으로 표기) 속에 이탈리아 시를 몇 편 번역하고 있습니다. 해조음이란 번역 시집을 펴면 가장 먼저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 1863~1938)의 시가 나옵니다. 이는 영역을 토대로 중역한 것입니다. 

  『해조음의 연구자인 야스다 야스오(安田保雄)의 연구서에는 우에다 빈이 번역할 때 본 아서 시먼즈(Arthur Symons, 1865~1945)의 영어 번역문이 실려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야스다 선생에게 저는 중학생 시절 수업을 받아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시골 구제(舊制) 중학교 국어 시간인데도 훌륭한 강의를 해 주셨으니까요. 하여간 『해조음』에, 그 시절부터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의 시가 수록되어 있었지요. 우에다 빈이라는 인물은 어느 시점에 도쿄대학에 초빙되어 그곳에서 이탈리아 문학에 전념하려 했던 듯합니다. 그런데 단명해서 안타깝게도 뜻을 이루지는 못했죠. 단테의 신곡 Divina Commedia도 번역하려 했지만 미완성 원고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우에다 빈은 단테를 소개하려고 아마 처음에는 영역본을, 다음에는 불역 본을 사용한 게 분명해 보이는데, 뒤에도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영어로 이탈리아어로 된 것을 옮기려 하면 상당한 무리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우선 무엇보다 영어에서 단테를 옮기려 한 우에다 빈은 도중에 지독한 고통을 맛본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쉽지만 우에다 빈은 단테에게 아무래도 접근하지 못한 채 끝나버린 한 사람입니다. 만약 우에다 빈이 단테를 바로 이탈리아어에서 번역하려 했다면 현대 일본에서 이탈리아 문학의 번역이나 연구도 상당히 다른 것이 되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저에겐 있습니다.

  단테와 함께 고전 작가의 한 명으로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대단한 문학가인데 일본에서는 오해되거나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서 참으로 안타까운 결과에 빠져 있습니다만, 단테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뒤지지 않는 대단한 작가입니다. 시인이기도 하지요. 이런 보카치오가 쓴 유럽 최초의 소설로 데카메론 Decameron이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일본어로 옮기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던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모리타 쇼헤이(森田草平, 1881~1949)가 있습니다. 모리타 쇼헤이는 독일어 번역본을 가지고 일본어 번역을 시도했습니다. 독일어 번역본으로 필사의 노력으로 일본어 번역본을 만들어 냅니다. 그에게는 다눈치오의 영향을 받은 소설 등 여러 업적이 있습니다만 데카메론(1931)의 번역은 모리타 쇼헤이의 업적 가운데 가장 큰 것 중 하나일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모리타 쇼헤이와는 꽤 다른 각도에서 보카치오를 보고, 영역본에서 접근한 사람으로 토가와 슈코츠(戶川秋骨, 1870~1939)가 있습니다. 그 역시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916)을 완역했습니다. 이것도 대단히 악전고투한 결과물입니다. 토가와 슈코츠는 그렇지만 모리타 쇼헤이보다 더 깊이 보카치오의 진가를 간파한 중요한 인물입니다. 다만 영어에서 번역했던 까닭에 상당한 한계를 느꼈던 듯합니다.

  이어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로 이야기를 옮겨보지요. 마키아벨리는 일반적으로 정치학 혹은 역사학이란 관점에서 연구되어 왔는데, 물론 의의는 있습니다만 크게 정리한다면 마키아벨리는 문학자입니다. 이탈리아 문학사를 펴보면 마키아벨리가 대단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죠. 분명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Il principe(1532)를 저술했습니다. 그리고 리비우스(Titus Livius, BC59~AD17)의 『로마사 Ab Urbe Condita Libri 최초의 10권을 둘러싼 논고, 즉 로마사론 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1531)이란 장편을 썼습니다. 이따가 잠시 언급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치적으로 패배한 이후 이러한 논고나 역사를 썼습니다만, 불우한 생활 속에서 극작이나 시편을 많이 저술하여 문학자로서도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이 마키아벨리의 작품은 물론 영어를 중역하거나 혹은 독일어나 프랑스어에서도 중역되고 있습니다만, 이탈리아어로부터 직접 일본어로 번역되는 것은 꽤 시간이 흐른 뒤의 일입니다.

  제가 조사한 범위에서는 본 도쿄 외국어 대학의 전신인 도쿄 외국어 학교 시대에, 직접적으로는 알지 못합니다만, 저보다 3대 정도 전에 교수였던 요시다 야쿠니(吉田彌邦)란 분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번역합니다. 1931년 헤이본사(平凡社)에서 간행된 군주 경국책 급 비판(君主經國策及批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실려 있고, 뒷부분에는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II)의 군주론 비판(君主論批判)이 실려 있습니다. 전반부 번역은 요시다 야쿠니가, 후반부인 군주론 비판는 나가세 호스케(長瀬鳳輔)라는 인물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전반부에 실린 것인데, 요시다 야쿠니는 군주론이란 제목이 아니라 군주경국책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는 절충안입니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가 1513년경 쓴 『군주론이 일본에 처음 번역된 것이 1886년(명치 1년)으로 거의 동시에 두 종류의-영어로부터의-중역본이 나왔었습니다. 즉 나가이 슈헤이(永井修平)가 번역한 군론(君論)(東京 : 博聞社, 1886.8 발행)과 스기모토 세인(杉本淸胤)이 번역한 경국책(經國策)(東京 : 集成社, 1886)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참, 미리 말씀드리지만 요시다 야쿠니는 분명히 이탈리아어 본을 통해 번역했더랬습니다.


Ⅲ. 번역이란 무엇인가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저에게 번역이란 무엇일까. 이 문제에 관해서 지금으로부터 20년 이상 전인 1974년에 글을 쓴 것이 있습니다. 「번역의 이상과 현실」이라 제목을 붙인 사백 자 원고지로 50매 정도의 나름 긴 문장입니다.(슈에이사(集英社)에서 발행하는 잡지 스바루제16권에 수록) 그 뒤 서사시의 정신(이와나미서점, 1990)에 수록하였습니다. 글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인용해보지요.

번역이란 고통스럽고도 허무한 영위(營爲)다. 만일 의협심이 없다면 도저히 이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낡아서 잊혀져 가고 있는 마음-의협심. 이 폐기된 그리고 얼마간 희극적 의미를 품은 단어를, 번역이 끝난 뒤의 허허로움 속에서, 혹은 고통스러우면서도 다시 번역하려는 새로운 결의 속에서, 문득 나는 떠올릴 때가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나의 보잘것없는 경험에서 결국 번역이란 죄다 실패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미리 말하지만 지금 문제로 삼는 것은 문학 작품, 그러니까 시나 소설의 번역이지, 예컨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논문의 번역은 아니다. 잘 알고 있듯 문학 작품 속의 낱말은 과학 논문 속에서의 낱말과 이질적 기능을 맡고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낱말이 표현의 수단에 머무는 것에 비해 전자 즉 문학 작품에서 낱말은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논문을 번역할 때에는 무엇보다 우선 정확하게 의미를 포착하여 오역을 피해야만 한다. 그러나 오역이 없는 번역된 시가 문학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시는 대체불능의 낱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러한 낱말은 각각의 의미를 나타냄과 동시에 시 전체가 나타내려 하는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시는 본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낱말을 조직하는 것이기 때문이니까. 혹은 시는 떼 지어 핀 해바라기라고 말해도 좋다. 해바라기의 꽃봉오리나 잎사귀 그 하나하나가 시어(詩語)이고, 한 송이의 해바라기는 시의 일 연(連)이다. 그리고 그러한 군락은 한 결같이 햇살을 향하고 있다. 시어에 있어 은유의 문제나 시에서의 유추의 문제 등은 앞서 언급했듯 현재 논의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신곡이 우의적 문학이라는 것만은 여기서 미리 짚어 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주가쿠 분쇼우(壽岳文章)가 번역한 단테의 신곡이 슈에이사에서 출판되었을 때-아직 「지옥」편만 나온 상황이었지만-서평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주가쿠씨도 지금은 저세상 사람이 되어 이미 역사 속의 인물이 돼버렸습니다만, 이 주가쿠씨가 아직 건강했을 무렵 신곡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가쿠씨도 물론 이탈리아어에서 번역하고 싶어 했지만 그리 간단히 이탈리아어를 잘할 수 없었을 테니 영어를 중심으로 번역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위에 언급한 제 문장의 첫 문장은 「번역이란 고통스럽고도 허무한 영위(營爲)다」입니다. 그리고 「만일 의협심이 없다면……」이라 글을 잇고 있는데요. 의협심이란 것은 조금 이상한 낱말입니다만, 이런 낱말이 없다면 번역 같은 것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대전제입니다. 제 번역을 내주었던 편집자 분들은 잘 알고 계시지만 사실 저는 번역은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해설만을 쓰고 싶어 하죠. 번역은 누군가 떡하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그런데 제 눈으로 보면 어딘가 불만스러운 번역이 많아서 결국에는 본문도 번역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제 꿈 입니다만 누군가 진정 뛰어난 번역자가 나와서 본문을 번역해주고 해설만 제가 쓰게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겁니다. 그런 일은 아무래도 일어나지 않아서, 사태는 역전되어 저는 해설을 쓰기 위해 번역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해설만 쓴다 해도 본문이 없다면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만두지도 못하고 번역을 합니다. 그러한 역전된 사태 속에서 일종의 의협심이 필요하게 되죠. 의협심이란 낱말은 아무래도 딱 맞는 낱말은 아니기에 무언가 다른 낱말이 있으면 좋겠지만 말이죠. 어쩔 수 없이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보면 그것은 원작자에게로의 하나의 침잠, 일종의 사랑과 비슷한데요. 원작자를 위해 일본어로 번역하는 것이니까요. 단테의 경우도 그러하고, 그리고 보카치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현재는 10년 정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까지도 마키아벨리가 너무 안타까워 죽겠기 때문입니다. 군주론은 제가 보기에는 하나의 문학작품입니다. 이곳저곳에 운을 밟거나 실로 교묘한 문학적 트릭을 사용하거나, 또는 문학적 테크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그런 마키아벨리의 진가를 일본의 독자에게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번역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제 느낌입니다. 가능하다면 누군가 해주었으면 합니다만 그만두지 못하고 현재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의협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이것이 번역을 하고자 할 때의 대전제가 된다고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문학적 번역」이라는 점입니다. 도쿄 외국어대학 《총합 문화 연구소》의 공개 강좌라는 관점에서 보면 저희들은 문학작품의 번역을 현재는 문제로 삼고 있습니다. 즉 문학작품의 번역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예로 든 문장 속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답을 했습니다. 「오역이 없는 역시(譯詩)라고 해서 문학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혹은 정확한 번역이 문학작품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해도 좋겠군요. 나아가 달리 말하면 의미를 정확히 포착하면 문학작품의 번역이 가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의미를 정확하게 번역한 시가 전혀 시적(poetic)이지 않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문학작품 가운데 사용된 낱말은 과학논문에서 사용하는 낱말과 다른 성질의 것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와 논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해하기 쉽게 단순화해서 생각해보도록 하죠. 시는 행을 바꿔가며 쓰지만, 논문은 그런 식으로 쓰지 않습니다. 시에는 시의 형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의미의 정확함을 넘어서는 곳에서 별도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시의 아름다움이라 표현하거나, 그 아름다움도 시의 내용적인 아름다움에 있다는 둥 아니면 시의 형식적 아름다움에 있다는 둥 하지만, 어떻든 간에 내실과 함께 갖추어진 하나의 완성된 낱말의 형태로서 시는 존재할 뿐입니다. 여기서 단테의 신곡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Ⅳ. 신곡 번역의 예

  단테는 신곡을 쓰면서 3운구법(3韻句法, terza rima)이라는 시작법을 이용했습니다. 1연(stanza)은 3행으로 이루어지는데, 각 행은 11음절로 구성됩니다. 각 행의 말미에 오는 음, 즉 각운은 한 행씩 걸러서 밟습니다. 단테는 ‘3’이라는 숫자에 꽤 집착했는데요, 3행, 3행, 3행……의 형태로 시를 써나간 것입니다. 각운은 ABA, BCB, CDC……의 형태로 사용하면서요. 이를 '테르자 리마'라 합니다. 왜 이렇게 했느냐 하면 단테가 신곡에서 가장 중시했던 사고 방식이 삼위일체였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설이라는 것은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말하는 「아버지인 신과 아들인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이 일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까닭에 단테는 3이라든가 1이라는 숫자에 그토록 집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1연 3행, 1연 3행 ……으로 써나갔던 것입니다.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3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편은 서른세 개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옥편의 첫 노래는 전체의 서가(序歌)로 신곡 전체 100곡은 (1+33+33+33=100)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테는 ‘10’이란 숫자를 완전수(完全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곡의 구조는 "100=10의 제곱=(3의 제곱+1)의 제곱"이 되기도 합니다.

  번역의 실례로서 「지옥」편의 첫 번째 노래, 즉 신곡 전체의 서가에 해당하는 첫 9행의 번역을 열거해 보도록 하죠.

  • 〔A〕우에다 빈(上田敏, 1874~1916)의 번역

인간 세상의 길 한복판, 어스레한 수풀(森)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곧은길을 모르겠다. 아, 이 쓸쓸한, 험난한, 험조(險阻)한 수풀의 그 가혹함을 얼마나 더 한지 말할 수 없으니, 생각만으로 두려움은 또다시 돌아온다.

죽음의 고통도 설마 이 고통에는 넘어설 수 없으리라. 그렇기는 해도 거기서 보았던 좋은 것을 내보이기 위해, 나는 보았던 다른 것들도 한번 말해보리라.

  • 〔B〕야마가와 헤이자부로(山川丙三郞, 1876~1947)의 번역

나는 길을 잃어, 인생의 여행(羈旅) 반쯤에 있는 어두움 숲(林) 속을 걷네

아아, 거칠어서 들어가기 어려운 이 숲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두려움을 떠올리니 새로워

아픔을 주는 것 죽음에 못지않아, 하지만 내가 거기서 누린 행복을 말하기 위해, 내가 그곳에서 본 모든 것을 말하리.

  • 〔C〕주가쿠 분쇼(壽岳文章, 1900~1992)의 번역

이 세상 여로(旅路)의 한 복판, 문득 알아버렸으니, 나는 옳은 길을 잃고, 어두운 수풀(森)에서 헤메이고 있다.

아아, 그 숲의 무서움, 험준함, 황량함을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두려움이 돌아온다.

그 경험의 고통은, 죽음에도 전혀 뒤지지 않아, 거기서 만났던 좋은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말하리라, 거기서 본 다른 것들도.

  • 〔D〕졸역

인생의 한 복판에

깨달은 것은 내가 어두운 수풀 속에 있다는 것,

올바른 길을 잃어버린 채.

 

아아, 어떻게 말로 이 곤란함을 표현하려나

이 수풀의 황량하고 험준하며 무참함은

생각만으로도 공포가 다금시 새삼스러워지는구나!

 

그 고통의 풍경은 죽음에도 뒤지지 않지.

하지만, 거기서 보았던 좋은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거기서 만난 다른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지.

  • 〔참고〕박상진 역(민음사, 2007)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아,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며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새로 솟는다.

 

죽음도 그보다 덜 쓸 테지만,

거기서 찾았던 선(善)을 다루기 위해

거기서 보아 둔 다른 것들도 말하려 한다.

  위의 번역문 네 개를 비교해서 읽어보면,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은 A, B, C는 서로 닮은 번역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D와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단테가 3행 1연으로 각운을 밟는 시법(terza rima, 3운구법)을 고안한 것은 이미 언급했습니다. 일본어로 1행을 11음절로 해보거나, 한 행을 건너뛰어 각운을 밟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어서, 억지에 가깝겠지요. 일본의 시에는 별개의 운율이 있고, 별개의 시법(詩法)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3행 1연의 형태까지 무너뜨리는 것은 지나친 일이겠지요.

  A, B, C의 번역 방식은 3행 1연을 모아서 하나의 문장(단지 하나의 문장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만)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A가 생각해낸 것으로, 이를 블록(Block) 방식이라 명명해 두죠. 일본어 번역에서는 처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곡의 영어 번역 등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방식입니다.

  C의 주가쿠 분쇼가 번역한 신곡 지옥편의 호화판(豪華版)이 슈에이샤(集英社)에서 나왔을 때, 독서계에서 화제가 되어 서평도 몇 편 나왔습니다. 그 와중에 두 가지가 걸리는데요. 그것은 제가 꽤 긴 서평이라 해도 좋은 「번역의 사상과 현실」이라는 문장을 쓴 것입니다.

  그 글에서 저는 주가쿠 분쇼의 번역이 갖는 훌륭한 부분은 이러이러한 것이라는 식으로 평가하면서, 동시에 이러이러한 것은 좋지 못하니 개선되어야만 한다고 썼습니다. 그 하나가 우에다 빈 이래로 사용된 블록 방식의 번역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주가쿠 분쇼의 번역을 칭찬하면서 야마가와 헤이자부로의 번역은 지나치게 안이하게 비판한 경향이 있음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야마가와 헤이자부로의 번역은 여러 해에 걸쳐 이와나미 문고(岩波文庫)에서 정리, 출판한 것입니다. 저도 야마가와의 번역에 불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카야마 마사키(中山昌樹:1886~1944), 이쿠다 초코(生田長江:1882~1935), 다케토모 소후(竹友藻風:1891~1954)와 같은 인물들의 번역문 역시 자세하게 검토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원문을 검토해본 결과, 야마가와 헤이자부로가 가장 이탈리아어를 깔끔하게 번역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이긴 합니다만, 이후 여러 사람이 번역 작업을 했습니다만 야마가와 헤이자부로는 정말 애써서,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이 신곡을 번역했던 것이죠. 고생이 정말 여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집을 방문한 야마가와의 행색을 보고 ‘거지와 같다’고 써놓았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목숨을 걸고 단테의 신곡을 번역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저간의 사정이 혼마 아야코(本間綾子)라는 사람의 글에 적혀 있습니다. 쇼와 여자대학(昭和女子大學)에서는 번역가를 포함해서 문학가의 여러 언행을 조사하여 계속 잡지에 정리, 출판하고 있습니다. 저는 쇼와 여자대학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혼마 아야코가 남긴 야마가와의 일화는 쇼와 여자대학의 잡지 가쿠엔(學苑) 181호(1955년, 9월 발행-역자 주)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Ⅴ.  단테의 '어두운 수풀'

  그런데 말이죠, 화제가 바뀌었습니다만 아주 최근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신곡의 첫머리 3행이 인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사히 신문(朝日新聞)」(1999년 9월 26일, 금요일)에 게재된 「징역 13년」이라는 가로 쓰기로 된 문장 속에서였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알고 계시다시피 고베(神戶)의 중학생이 일으킨 연쇄 아동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 속에서 남자아이가 동급생에게 컴퓨터에 베껴 쓰게 한 것이 있는데요. 가로쓰기로 된 문장이 1, 2, 3, 4, 5로 이어지다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暗い森
아사히 신문 오사카 사회부가 펴낸 취재 기록 『暗い森―神戸連続児童殺傷事件』(1998)의 띠지에 실린 『 신곡 』 의 첫머리 3행

“이 세상 여로(旅路)의 한 복판, 문득 알아버렸으니
나(俺)는 옳은 길을 잃고,
어두운 수풀(森)에서 헤메이고 있다.”

  이는 물론 신곡 지옥편 서가의 3행입니다. 사건의 참혹함은 별개로 하고 저에게는 이 남자아이가 이 문장, 그러니까 “이 세상 여로(旅路)의 한 복판, 문득 알아버렸으니”를 어디에서 가져왔는지라는 점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남자아이는 3행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는 중요한 것입니다. 비교해서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남자아이는 주가쿠 분쇼의 번역문을 가져온 것이죠. 미세하게나마 활자 차이가 있습니다만 이는 컴퓨터라는 기계의 탓입니다. 최근에는 직접 “히토(人)”라고 입력하지 않더라도 “HITO”라는 기호를 입력하면 여러 가지 낱말이 나오니까요. 최근에는 글자를 쓰지 않더라도 기계에서 짠하고 나오는 세상이지요. “나(俺)는 옳은 길을 잃고”에서, 아마 이 남자아이는 “엄(俺: ‘오레’의 한자 표기-역자 주)”이라는 한자를 평소에 쓰지 않더라도 히라가나의 “오레(おれ)”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또 주가쿠 분쇼의 번역문은 “와타시(私, わたし)”로 되어있습니다만 “오레(俺, おれ: 좀 더 거친 남성적 표현으로서의 ‘나’-역자 주)”라는 표현이 더 좋다고 생각한 까닭에 “나()는 옳은 길을 잃고”라고 바꾼 것일 겁니다. 주가쿠 분쇼는 “마스구나(ますぐな, 真直な: '옳은'으로 번역해 놓았다-역자 주)”로 번역했습니다만, 이 아이는 “맛스구나(まっすぐな, 真っ直ぐな)”로 바꿨습니다. 이편이 분명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어두운 수풀(森)에서 헤메이고 있다”의 행에서도 이 아이의 번역에서 한자가 한 자 더 늘었습니다.(주가쿠 분쇼의 번역문 가운데 ‘헤매다’의 “迷いこんで”를 남자아이는 “迷い込で”로 써넣음-역자 주)

  정말이지, 이 소년의 3행이 단테의 시를 인용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두세 명의 친구가 팩스로 질문을 해왔더랬죠. “이 소년의 3행을 어떻게 생각해?”라고 말이죠. 저는 대답했습니다. “소년의 3행은 주가쿠 분쇼의 번역을 토대로 자신의 개성을 살린 변화를 준 것이다. 그러나 3행을 나누었다는 점에서는 주가쿠 분쇼의 번역보다 본래의 의미에 좀 더 가깝다”라고요. 「아사히 신문」은 “어두운 수풀”이라는 제목으로 무려 2주간 소년의 기사를 연재했습니다. 기자는 “어두운 수풀”의 실태를 바깥에서 해명해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젠가 소년 자신의 내부로부터 밝혀지게 될 것이지요.


Ⅵ. 「군주론」의 번역

  이야기를 종전으로 돌려보지요. 외국 문학을 번역할 때에 가장 곤란한 점은 원문이 결정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Machiavelli, Niccoló)의 군주론을 번역한다고 했을 때, 바로 이점이 가장 큰 문제가 됩니다. 군주론은 1513년부터 이듬해인 1514년에 걸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초판이 나온 것은 1532년으로, 피렌체와 로마 두 곳에서였습니다. 그것도 저자인 마키아벨리가 사망한 1927년보다 뒤의 일입니다. 즉 저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출판된 것이죠.

  1500년대 초에 마침내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출판된 것입니다. 군주론의 자필 원고는 현재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발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마키아벨리가 쓴 원고는 적어도 세 부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는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주위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었을 것이고요. 또 하나는 친한 친구에게 필사해서 보냈을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메디치가의 군주 로렌초 2세(Lorenzo di Piero de' Medici, 1492~1519)에게 헌정한 것입니다. 아쉽게도 그 어떤 것도 현재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까지 전해져 온 군주론누가 쓴 것일까요? 아니 정확히 표현할 필요가 있겠네요. 대체 누가 필사한 것일까요?

  아니죠, 좀 더 정확하게 말해야겠습니다. 정확하게 필사한 것일까요? 앞서 살펴본 고베 소년의 3행을 생각해보세요. 겨우 3행의 시를 베꼈음에도 꽤 차이가 발생합니다. 군주론은 내용이 참신하고 자극적인 데다 가공할 유효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읽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필사본을 또 다른 필사본으로 만들어 읽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연 ‘정확하게’ 필사되었을까 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군주론의 자필 원고-기호 ‘A’로 표시하겠습니다-는 현재 발견되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자필 원고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적어도 세 부는 있었을 것입니다. 이를 각각 A1, A2, A3라고 표기해 보지요. 그리고 현재 타인에 의한 필사본은 약 20종 정도 있습니다. 이들 필사본의 차이를 조사해보면 10종으로 한정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들을 정밀하게 조사해보면 필사본은 세 종류의 그룹으로 분류됩니다. 이들 필사본의 상호관계를 그려낸 것이 사본 계통수(寫本系統樹)라는 것으로, 그 도표 속에서 원본을 찾아내 자필 원고를 확정하거나 추정하는 것이 문헌학의 임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헌학은 이탈리아어로 필로로지아(Filologia)라고 하는데요, 원래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의 문헌 연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만 이탈리아에서는 20세기에 별도로 발전을 이룹니다. 연구 대상이 이탈리아 고전 문학에 한정되었기 때문인데요. 단테,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 등의 오래된 필사본 연구가 진행되어, 신곡의 자필 원고만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만, 원문 비평 연구는 상당히 진전되었습니다.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 Canzoniere 원문도 거의 결정된 것으로 보이고,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Decameron의 경우에는 자필 원고를 확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문이 결정되지 않고 어떻게 번역이 가능하겠습니까?

  『군주론의 경우에도 리지오 판(Giuseppe Lisio edition, 1899)에 의해 근대적 의미의 원문 비평이 이루어지고, 마쪼니‧카젤라 판(Mazzoni & Casella edition, 1929) 이후 카젤라 단독판(1930)이 그 이전의 난점을 비약적으로 극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무슨 까닭인지, 이유야 몇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리지오 판과 그 계열의 판본만이 번역되어 왔습니다. 어쩐 일인지 리지오 판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비판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온 것입니다.

  여기에 다시 본론으로 되돌아가면, 마키아벨리를 위해서 또는 그가 기대한 미래의 독자를 위해서 저로서는 의협심을 발휘해서 근 10년간 이탈리아 대학, 도서관, 고서점 등지에서 군주론과 관련한 문헌을 찾아왔는데요, 이제는 거의 일단락이 나서 머지않아 군주론번역본을 세상에 내놓을 작정입니다.

※ 역자 주: 이 공개강좌는 1997~98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가와시마의 강연은 1998년에 진행되었다. 가와시마의 『군주론』 번역본은 같은 해에 이와나미 문고(岩波文庫)에서 출간되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이탈리아 문헌학은 과학적인 사본 연구나 원문 비평 연구에서 출발해서 새로운 문학 연구 방법을 확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신문헌학(Nuova Filologia)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죠. 신문헌학이 가져온 성과에 관해서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제가 하는 번역 작업이나 이탈리아 문학 연구 역시 신문헌학과 서로 조응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 彬田玄白,『蘭学事始』(緒方富雄 校注, 岩波文庫)
  • 加藤周一 ‧ 丸山眞男, 飜譯の思想』(日本近代思想大系 第 15卷, 岩波書店, 1991)
  • 上田敏, 海潮音』(上田敏 全訳詩集』 所收, 岩波文庫)
  • 보카치오, デカメロン』, 森田草平 역, 新潮社, 1931. ; 戶川秋骨 역, 國民文庫刊行會, 1916. ; 河島英昭 초역, 講談社文藝文庫, 1999.
  • 단테, 神曲』, 上田敏 역 未定稿, 修文館書店, 1918. ; 山川丙三郞 역, 岩波文庫, 1952~1958. ; 壽岳文章 역, 集英社, 1974.
  • 마키아벨리, 君主論』, 河島英昭 역, 岩波文庫, 1999.
  • 河島英昭, 「マキャヴェッリ 君主論』のテキストをめぐって」, 季刊 文學』, 1998 秋號 所收, 岩波書店.

【추천 번역 작품】

이와나미 문고본(岩波文庫本)

  • 단테, 新生󰡕, 山川丙三郞 역, 1948.
  • 페르라르카, わが秘密』, 近藤恒一 역, 1996.
  • 페트라르카, ルネサンス書簡集』, 近藤恒一 역, 1989.
  • 프랑코 사케티, ルネサンス巷談集』, 衫浦明平 역, 1981.
  • 벤베누토 첼리니, チェッリーニ自傳』 全二冊 , 古賀弘人 역, 1993.
  • 토르콰토 타소, 愛神の戯れ』, 鷲平京子 역, 1987.
  • 카를로 골도니, 抜目のない未亡人』, 平川祐弘 역, 1995.
  • 조반니 베르가, カヴァレリーア・ルスティカーナ 他十一篇』, 河島英昭 역, 1981.
  • 알베르토 모라비아, 無関心な人びと』 全二冊, 河島英昭 역, 1991.
  • 이탈로 칼비노, イタリア民話集』 全二冊, 河島英昭 역, 1984~1985.
  • 이탈로 칼비노, むずかしい愛』, 和田忠彦 역, 1995.

◆ 기타

  • 알레산드로 만초니, 『いいなづけ』, 平川祐弘 역, 河出書房新社, 1989.
  • 『ルネサンスの箱』, 渋沢竜彦文学館 <1>, 河島英昭 外譯, 筑摩書房,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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