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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해석학-해석의 지평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4. 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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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6호(통권 210호), 2017. 6, 8쪽.


번역이란 무엇인가

해석의 지평

  이번 글에서는 번역에 대해 해석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해석학은 오래된 학문으로 특히 신학, 문헌학과의 관계가 깊다. 해석학은 원래 성서를 비롯한 문헌에 대한 이해가 목적이었으나, 19세기 슐라이어 마허(Schleiermacher, Friedrich Daniel Ernst)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이후 하이데거(Heidegger, Martin)에 의해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의미를 규명하기 위한 학문"으로 점차 변화하였다.

  번역에는 텍스트의 ‘이해’와 ‘표현’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번역 과정에서 우선 기점 언어인 텍스트의 이해부터 해석이 이루어지며, 그 해석이 목표 언어로 표현된다. 하이데거는 해석을 ‘이해의 한 형태’로 보고 그 관계를 존재론 속에서 찾았다. 존재(Sein)가 인간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해석이라고 보는 것이다. 인간은 이해라고 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즉 이해란 인간의 존재 양식 그 자체라고 그는 생각했다. 번역을 말할 때 원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명제는, 필연적으로 ‘이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전제가 된다.


  이에 대해 가다머(Gadamer, Hans-Georg)는 인간의 세계 경험은 그 자체가 언어적 세계 경험이며, "무언가에 대한 이해는 언어적 형태를 통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중략) 이해는 그 무엇 자체가 언어에 이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가다머, 2008:583)며 언어는 이해의 보편적인 매체이자 이해의 수행 양식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이해란 우리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의미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것은 고정적인 관점에서의 대상에 대한 규정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의미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적용((application)'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이 ‘적용’에는 차이가 생긴다. 그는 "원래 이해할 때는 (서로-역자 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가다머, 2008:465)고 주장했다. 우리는 각각의 방법으로 이해하므로 그 이해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적은 번역을 수용과 변용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시각을 제시하지만, 이 글에서는 문제 제기의 선에서 머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정적으로 ‘해석’을 정의하고 싶다. 해석이란 이해를 통해 어떠한 응답을 하는 것으로,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을 더욱 확장 ‧ 분절화하여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석의 전제로서 이해 그 자체가 필요 불가결하다. 번역자는 기점 언어의 텍스트에서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 가치를 드러내는 형태로 해석한다. 그 해석이란 번역자 자신에 의한 응답, 즉 이해의 실천이다.

"번역은 이미 해석일 뿐만 아니라, 번역이란 늘 번역자가 자신에게 부여된 말에 대해 행하고 있는 해석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가다머 2012:680)

  이처럼 가다머는 번역을 해석이라고 천명했다. 나아가 그는 이해와 해석의 언어성을 ‘작용사적(wirkungsgechichte) 의식의 구체화’라고 하는 관점에서 파악했다(가다머, 2012:687). 번역자에 의한 해석은 자신이 서 있는 공간적 · 시간적 배경이라고 하는 전통을 짊어지고, 그 영향을 상당히 받고 있는 자신을 ‘적용’함으로써 마침내 성립된다. 즉 수용자로서 번역자는 자신의 해석 과정에서 과거라는 전통으로부터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텍스트 해석에 있어서 번역자는 무색투명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입견이라는 선행 판단을 필터로 사용하면서 역사적 존재인 번역자 스스로 텍스트의 가치를 찾아낸다. 개인이 갖는 선입견이란 개인이 내리는 판단보다 훨씬 더 그 존재의 역사적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이다.(가다머, 2008:437) 즉 이해의 기반이 되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와 그 선입견을 넘어서 버리는 것은 이해라는 행위 자체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아가 번역자는 이해의 실천으로서의 해석을 목표 언어로 텍스트화하여 표현한다. 그 텍스트는 수용자에 의해 다시 해석된다. 따라서 번역자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존재인 동시에 해석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쌍방향적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간적 · 시간적 지평의 거리 속에서 자신을 항상 수정하는 유연성이 요구된다.


  번역은 해석 그 자체임과 동시에 원문과의 대화라고도 할 수 있다. 번역자는 번역 과정에서 공간적 · 시간적 지평을 넘나들며 늘 대화를 반복한다. 그리고 원문 텍스트의 지평과 자신의 해석이라는 지평의 융합을 지향한다. 원문 텍스트의 배후에는 원저자의 창작 활동 전반과 표현 영역, 원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다양한 관념적 영향, 나아가 원저자의 전 인격적 삶의 관계가 가로놓여 있는데, 대화 과정을 통해 그것들을 거울에 비치듯 드러내게 된다. 그 대화에서 번역자가 행하는 해석은 어디까지나 기성의 전통적 해석이라는 선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상호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해석학적 순환은 원문 텍스트 전체를 개별적인 부분에서 예견하면서 이해함과 동시에, 개별적인 부분을 전체로부터 이해한다고 하는 순환에도 들어맞는다.

  그것은 말이 가지는 본질 구조와도 합치한다. 가다머는 말을 영향이나 작용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했다. 대화라는 의사소통을 통해 말의 의미가 증명되듯이, 번역도 해석적 대화에 의해 비로소 의미의 생기(生起, Geschehen)가 가능해진다. 번역자가 직면하는 이 해석학적 대화는 자기와 타자라는 관계성에서 항상 자신을 열린 존재로서 양성한다. 그 경험과 시선은 언어 간의 차이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의 여러 ‘격차’를 극복하면서, 공동성을 희구하기 위한 단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에 대한 자기의 해방은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한 해방이기도 하기에, 그 과정에서 ‘우리’라는 공동성이 명확하게 인식되기에 이른다. 인간의 지식에 대한 부단한 생성 과정은 상호 이해라는 동적인 전개를 통해 계속될 것이다.

  문서 자료만큼 정신의 순수한 흔적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없고, 문서 자료만큼 이해하(려)는 정신에게 의존하는 것도 없다. 문서를 해독하고 해석할 때에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곳에서는 무언가 낯설고 죽어 있던 것이 완전히 동시적인 것, 친숙한 것으로 변모하는 것이다.(가다머, 1986:239) 기적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해석에서의 지평 융합(Horizontverschmelzung)의 순간은, 번역자로서는 자신 안에 살아있는 전통이라는 ‘과거’를 인식하면서, 역사적 존재로서 대화 속에서 어떠한 선입견도 없는 자신을 이해시키고, 미래를 향해 자신을 해방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인용문헌]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구쓰와다 오사무(轡田収) 외 역, 『진리와 방법 Wahrheit und Methode』Ⅰ~Ⅲ, 法政大学 出版局, 1986, 2008,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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