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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언어학(1)- 번역이란 무엇인가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3. 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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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11호(통권 203호), 2016.11, 8쪽.


번역이란 무엇인가

언어학과의 관계

  문명의 충돌을 구가한지 오래다. 세계는 다양화의 길을 걷고 있으며 다양한 사상과 가치관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인간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확실히 현대는 다문명적 세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문명과 문명이 접촉하면서 마찰과 충돌이 일어난다. 세계에는 무수한 언어가 있어서 필연적으로 언어와 언어의 접촉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인류는 언어를 매개로 하여 서로 다른 문명끼리의 절충 혹은 융합에 의해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 왔다.이러한 언어간 접촉의 한 형태가 번역이며, 그 "사이"에서 두 언어를 병용하는 것이 번역자이다.

  이 두 언어의 관계성에 의거한 번역은 언어학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언어학은 개별 언어인 ‘랑그’ 그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것과 달리, 번역은 어느 언어로 서술되어 있는 한 덩어리의 ‘파롤’을 대상으로 한다. 즉 두 ‘랑그 Langue’ 간을 오가면서 '파롤 Parole'을 운용하는 동적 행위가 번역이다. 언어학자로 저명한 조르주 무냉(Georges Mounin)은 「번역의 이론」에서 “번역의 존재는 현대 언어학의 스캔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중략) 번역 활동은 현대 언어학에 이론적 문제를 제기한다. 어휘, 형태, 통사 구조에 관한 통설을 받아들인다면 번역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번역자는 존재하고, 생산하며, 우리는 그들의 생산물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무냉, 1980:21)며 번역 불가능론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과학지(科學知)로서의 언어학이 포섭할 수 없는 번역의 논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이 지적은 문학이나 시의 번역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의 번역은 단순한 번역이라기보다 새로운 문학 작품을 만들어내는 행위이며, 이를 위해서는 문학자가 필요하다. 시의 번역도 마찬가지여서 시인이 아니면 시의 번역이 불가능하다. 번역자가 어절 구조나 압운, 어휘 등을 충실하게 치환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제 문학도 시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예컨대 일본어의 고로아와세(語呂合わせ: 말 소리의 유사함을 이용한 말 장난-역자 주) 등도 그 의미를 번역했다고 해도 어투가 가진 경쾌한 인상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번역이 기술이나 경험, 센스라는 비언어적인 측면을 지닌 작업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처음 번역에 종사하기 시작할 무렵, 은사이자 선배인 분으로부터 “사전으로는 번역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 번역자는 언어의 "사이"라고 하는 매우 불안정한 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자와 같은 것이다. 확실히 사전에서는 어떠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지만, 방향이 정해지지 않는 자석에 의지해 길거리를 헤매듯이, 때로는 사전에 의한 번역이 샛길로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번역은 어떤 언어의 단어를 다른 언어의 단어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의 텍스트를 해석하여 그 해석을 다른 언어로 텍스트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언어학의 통사론에 근거하여 기호와 기호를 바꾸는 형식은 번역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언어를 다루는 이상, 번역은 언어적인 작업이며 언어학에 기반을 둔 작업임에 틀림없다. 언어학에 기반을 두면서도 그것을 초월해 나가는 작업이 번역이다. 


  이 번역을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한 것이 로만 야콥슨이다. 그는 일반 언어학에서 번역을 <언어 내 번역>, <언어 간 번역>, <기호법 간 번역>으로 분류하고 있다(야콥슨 1993:57). <언어 내 번역>은 어떤 텍스트를 같은 언어 내에서 바꾸어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 간 번역>은 한 텍스트를 기점 언어에서 목표 언어로 나타내는 것이고, <기호법 간 번역>은 말, 소리, 영상, 그림 등을 모두 기호로 보고 어떤 기호를 다른 기호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분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그가 말하는 번역이란 광의의 번역이며, <언어 간 번역>이 협의의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어 내 번역> 즉 같은 언어 내에서 텍스트를 바꿔 말하는 작업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알아듣도록 말하는 경우나 교사가 난해한 설명을 다시 간략화하는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실은 이 기술은 <언어 간 번역>의 기술과 유사하다. <언어 내 번역>의 연장선 상에서 <언어 간 번역>을 파악한다면, 번역은 불가능하지 않고 동일 언어 내에서 환언이 가능하듯이 언어를 넘어서는 경우에도 가능한 것이 된다. 

  이 번역 가능론의 기초가 되는 개념은 ‘언어 간 언어학(interlinguistik)’에 의해 밝혀지게 된다. 마리오 반드루슈카는 인간의 2개 언어의 병용, 다언어 병용성을 기점으로 하여 “개인의 다언어 병용 능력은 궁극적으로 인간 언어의 다양성과 궤를 같이 한다”고 지적한다(반드루슈카, 1974:175). 한 개인은 이른바 모국어로서 말하는 ‘언어 내’에서 다종 다양한 언어를 때와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그것들 하나하나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언어라기보다는 불완전한 형태로 교차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인간 본위의 것으로 모국어 내에서 바꿔 말하기, 즉 <언어 내 번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궁극적으로 인류가 공유하는 다언어 병용 능력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언어 간 언어학이 행하는 번역 분석은 인간 언어의 진정한 성질을 해명해 준다. 즉 그것은 상호 언어 간 표현 형식과 구조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확인하고, 그 속에 포함된 인간의 정신 구조, 체험과 사고 구조의 유사성과 차이를 인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반드루슈카, 1974:186) 언어 간 언어학에서는 가능태로서 인류 공통의 한 언어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가정하여 언어의 보편성에서 번역을 다루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보다 상세하게 번역론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의 한계, 불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서로 접촉과 융합을 반복해 온 현실의 여러 언어를, 그물망처럼 교직되면서 서로 영향을 주는 하나의 집합체로서 거시적 관점에서 다시 파악함으로써, 이상적인 번역에 대한 일층 새로운 검증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언어의 보편적인 측면에 주목함으로써 이 다문명 세계에서 전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정신적 소묘를 그려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용 문헌]

조르주 무냉(이토 아키라(伊藤晃) 외 옮김), 『번역의 이론(翻譯の理論) Les problemes theoriques de la traduction』 朝日出版社, 1980년. 

로만 야콥슨(카와모토 시게오(川本茂雄) 외 번역), 일반 언어학(一般言語學) ESSAIS DE LINGUISTIQUE GENERALE みすず書房, 1993년 제 11판.

마리오 반드루슈카(후쿠다 유키오(福田幸夫) 옮김), 『언어간 언어학(言語間言語學) Interlinguistik : Umrisse einer neuen Sprachwissenschaft』 白水社, 1974년.


[인용 학자의 한국 번역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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