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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불교와 언어(4)-초기 불교의 사상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4. 3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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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2호(통권 230호), 2019. 2, 4쪽.


초기 불교의 사상

  석가가 사람들에게 직접 건넨 “말”은 그의 입멸 이후 제자들에 의해 기억되어, 구전으로 전승 보전되었다. 그리고 경전 제작자에 의한 사상적 변혁을 통해 그의 “말”은 불교라는 종교로 발전하였다. 팔리어(Pali)로 기술된 원시 불경인 삼장(三藏)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시되는 수트라(Sutra, 경전)는 직접 전수된 가르침을 의미하는 “아가마(Agama, 아함경(阿含經))”로, 디가 니카야(dīgha-nikāya, 장아함경), 맛지마 니카야(majjhima-nikāya, 중아함경), 상윳타 니카야(saṃyutta-nikāya, 잡아함경), 앙굿타라 니카야(aṇguttara-nikāya, 증일아함경), 쿳다카 니카야(khuddaka-nikāya, 소아함경) 이상 총 다섯 부문으로 나뉘어 정리되었다.

  이러한 팔리어 오부 경전 중에서도 「소아함경」에 속하는 「단마파다(Dhammapada, 법구경(法句經))」나 「숫타니파타(Sutta Nipāta, 경집(經集))」는 다수의 불교 경전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초기 불교의 사상이 명료하게 묘사되어 있다.

  석가가 태어난 당시의 인도는 다양한 부족의 도시 국가가 난립하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브라만교의 사상과 전통이 사회 규범으로서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석가 역시 출가 전에는 브라만의 사상을 배워 그 지식을 습득했다. 이후 그는 독자적 수행과 명상을 통해 자신만의 사상을 확립할 수 있었지만, 세인들을 향한 교화 활동에서는 기존의 전통과 풍습, 그리고 브라만의 언어까지 일단 인정하면서, 새로운 사상적 구조를 제시하는 자세를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브라만교의 사회적 규범으로서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바르나(Varna, 카스트 제도의 원형-역자 주)에 기초한 신분제를 비판하고 이를 대신하는 새로운 규범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러한 브라만교의 사상을 일단 승인하면서 동시에 그 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일상생활의 윤리와 도덕을 설파하는 유연한 자세가 그의 언행에서 엿보인다.

  「숫타니파타」에서 석가는 베다의 제식(祭式)을 섬기는 브라만인 바라드바자(Bharadvaja)와의 대화 속에서 바르나에 기초한 신분제도와 인간의 귀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찬다라 족의 아들로 개 잡는 백정이었으나 세상에 이름을 떨친 마탕가라는 사람이 있었소. 그 마탕가는 얻기 어려운 최상의 명예를 얻었소. 많은 왕족과 브라만들이 그를 섬기려고 모여들었소. 그는 신들의 길, 더러운 먼지로부터 떠나 큰길(大道)에 올라, 탐욕을 버리고 브라흐만(범천)의 세계에 가게 되었소. 천한 태생이지만 그가 범천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막지 않았소. 베다 독송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베다의 글귀를 가까이 하는 브라만들도, 때로는 나쁜 행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소. 그렇다면 현생에서 비난을 받고, 내생에 나쁜 곳에 태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소. 태어남에 따라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며, 태어남에 따라 브라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오. 그 사람의 행위로 인해 천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브라만이 되기도 하는 것이오.”(나카무라, 1986:35)

  이처럼 브라만 출신 바라드바자와의 대화에서 석가는 브라만이나 찬드라라고 하는 낮은 신분의 개념, 사후 세계, 브라만교의 구원관 등을 인정하면서, 브라만교의 언어를 사용하여 브라만의 사고방식에 입각해서 말을 건네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자신의 새로운 사상을 펼쳐보이고 있다. 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해서, 출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위에 따라 귀한 사람도 또 천한 사람도 될 수 있다는 이치를 명쾌하게 설파하고 있다. 이를 들은 바라드바자는 감명을 받고 석가에게 귀의했다고 한다.

  석가는 브라만교를 직접 비난, 배척하기보다는 브라만이 납득할 수 있도록, 그 이해의 바탕 위에 새로운 사상을 구축하는 화법을 익히고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라도 모든 인간에게 통하는 보편적인 진리를 ‘법’으로서 설파하였다. 또한 석가는 스스로 죽음을 앞두고 측근 제자였던 아난다가 비통해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한탄하지 말라. <중략> 모든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떠나고 달라지는 것을. 무릇 태어난 것은 존재하다 이루어지다 결국 파괴되기 마련이니,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느냐? 아난다여, 그런 이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나카무라, 1988:461)

  이렇게 모든 것은 변해가서 어떤 사람도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무상(無常)”의 법을 직접 엄숙하게 설파하였다. 그러나 같은 죽음에 관해 말을 하더라도 자신의 아이를 잃은 어머니에게는 똑같이 직접적 언사를 피하고, 당사자가 깨달을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있다. 「숫타니파타」와 마찬가지로 <소아함경>으로 분류되는 비구니들의 언행록인 「테리가타(Theri Gatha, 장로니게(長老尼偈)」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웃비리라는 여성이 자신의 어린 딸을 잃고, 화장터에서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비탄에 잠겨 있을 때에, 석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머니여, 그대는 “지바여!”라고 외치며 숲 속에서 흐느껴 울고 있군요. 웃비리여, 그대 자신을 아십시오. 모든 같은 지바라는 이름의 팔만사천의 딸들이 이 화장터에서 화장되었으니, 그들 중 누구를 그대는 애도하는 겁니까?"(나카무라, 2018:19)

  석가의 이 말을 듣고 발광과 착란 상태였던 웃비리는 석가의 물음에서 어떤 사람이든 모두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이와 같은 비탄이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차츰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딸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마주하며 석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아, 당신은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볼 수 없는 화살을 뽑아 주셨습니다. 당신은 슬픔에 빠져 있는 나를 위해 딸아이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제거해주신 겁니다. 이제야 그러한 나는 가슴에 박힌 화살이 빠져버린, 굶주림(망집(妄執))이 없는 사람이 되어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나는 성자 붓다와, 진리의 가르침과 수행자의 모임에 귀의하겠습니다.”(나카무라, 2018:19)

  석가의 “말”에 정신을 차린 웃비리는 출가하여 석가의 제자가 되었다. '그대 자신을 알라'는 석가의 “말”에 의해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고 있던 딸과, 그 주체인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비아(非我)의 경지,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을 나로 간주하는 데서 모든 고뇌가 생긴다’는 석가의 가르침을 스스로 깨닫고 출가했던 것이다.

  이처럼 석가는 같은 가르침을 설파할 때에도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해서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질문의 형태로 마치 병에 따라 약을 주는(應病與藥) 것이라 할 수 있는 말솜씨로 설법을 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시 불경에서 보이는 석가의 “말”에는 깨달은 자로서의 위엄과 함께 겸허한 인품이 스며 나오고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가르침의 진정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인용문헌】 

  •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역, 『붓다의 말, 숫타니파타(ブッダのことば スッタニパータ)』, 岩波書店, 1986년. ; 전재성, 『숫타니파타-붓다의 말씀』,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15년.
  •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 『고타마・붓다-석존의 생애(ゴータマ・ブッダ̶釈尊の生涯)』, 春秋社, 1988년.
  •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역, 『비구니의 고백, 테리가타(尼僧の告白 テーリーガーター)』, 岩波書店, 2018년. ; 전재성, 『테리가타-장로니게경』,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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