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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불교와 언어(6)-최후의 "말씀"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5. 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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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6호(통권 234호), 2019. 6, 5쪽.


최후의 "말(씀)"

  포교 여행을 계속한 석가의 만년의 모습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経, Maha parinirvana Sutra)>에 극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경전 역시 원시 불경에 속하며 그 내용은 상당히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면의 땅이 된 쿠시나가라(Kushinagar)에 겨우 도착하기 전에, 석가는 파바(pava)라고 하는 땅에서 대장장이로 일하는 춘다(Cunda Kammāraputta)라는 재가 신도의 망고 동산에서 머물렀다. 그래서 춘다는 석가에게 보시(dāna)로 버섯 요리(일설에서는 돼지고기)를 내놓았다. 그것을 먹은 석가는 심한 복통과 함께 병세가 위독한 상황에 이르렀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서 쿠시나가라에 도착한 석가는 포교 여행의 최후를 맞을 준비를 하면서 제자들에게도 그 각오를 당부하듯 침착하게 말했다고 한다.

“아난다여, 혹시 뒷날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가르침을 주시던 스승이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리의 스승은 없는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너희를 위해 내가 설해온 가르침과 내가 세운 계율이, 내가 죽은 후에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입니다.”(나카무라, 2015:165)

  부처는 제자들이 방종치 않고 수행할 것을 끝까지 당부하고 있었다. 이후 석가는 아난다의 질문에 답하여 자신의 장례에 관해 상세히 지시하였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수행 완성자의 유골 공양(숭배)에 구애되지 마세요. 부디 그대들은 올바른 목적을 위해 노력하세요. 올바른 목적을 실천하세요. 올바른 목적을 향해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진하고 전념하세요. 아난다여, 왕족의 현자들, 브라만의 현자들, 자산가의 현자들로 수행 완성자(여래)에게 청정한 믿음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수행 완성자의 유골을 숭배하려 들 것입니다. <중략> 아난다여, 세계를 지배하는 제왕(전륜성왕-역자 주)의 시신은 다음과 같이 장례를 합니다. 먼저 시신을 새로운 삼베로 감싸세요. 그다음 다듬질이 잘 된 무명베로 감쌉니다. 그다음 새로운 삼베로 감싸세요. 이런 식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왕의 시신을 500겹으로 감싸서 철로 만든 기름 구유(油槽) 속에 넣고, 다른 또 하나의 철 구유로 덮은 후 온갖 향료를 넣은 장작더미를 쌓아서 세계를 지배하는 제왕의 시신을 화장에 부칩니다. 그리하여 네거리(네 길이 하나가 되는 지점)에 세계를 지배하는 제왕의 스투파(Stupa, 불탑)를 세웁니다. 아난다여, 세계를 지배하는 제왕의 시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아난다여, 세계를 지배하는 제왕의 시신을 처리하는 것과 같이 수행 완성자의 시신을 처리해야 합니다. 네거리에 수행 완성자의 스투파를 만들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곳에 화환 또는 향료 또는 안료(顔料)를 바치고 예배하거나, 또는 마음을 깨끗이 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일어날 것입니다.”(나카무라 2015:140~142).

  석가는 브라만의 불을 중심으로 한 제식 중심주의를 설명하고, 이와 달리 올바른 행위와 명상이라는 실천주의를 설파하여 제자들에게 장례 등의 제식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자세한 의례의 지시에서는 다소 과장된 모습도 보이지만, 시신을 새로운 삼베로 싸서 화장하는 일은 현대 인도나 네팔에서도 행해지고 있어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어떻든 석가의 지시와 비슷한 형태로 장례가 진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출가자들이 장례 등 일체의 제식에 관여하지 않는 점은 초기 불교의 전통과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상좌부(上座部)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승되고 있어, 대승불교의 장송 의례와는 다르다. 석가의 유해는 말라족(Mallas) 재가 신도들에 의해 다비(茶毘, 화장)됐고, 유골은 리차비(Licchavi), 바이샬리(Vaishali ), 샤캬(Shakya) 등 여덟 종족에게 나뉘어 각각의 무덤에 안장됐다.

  2,500여 년의 시간을 거쳐 1898년 북인도와 네팔 국경 인근인 삐쁘라와(Piprahwa)에서 영국인 고고학자 윌리엄 페페(William C. Peppe)가 한 고분의 발굴조사(1898년)에서 납석(蠟石) 항아리를 발견하였다. 그 항아리 안에는 인골과 부장품이 담겨 있었고, 바깥쪽 상부에는 기원전 3세기경 아소카 왕의 석주 비문과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언어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거기에는 "성스러운 붓다의 이 유골 용기는 석가족의 형제자매와 처자가 받들어 모신다(원문: Sukiti bhatinam sa-puta-dalanam iyam salila-nidhane Budhasa bhagavate sakiydnam-역자 주)"고 적혀 있다. 1971년에 인도 고고학자 스리바스타바(K.M. Srivastava)에 의해 같은 장소의 더 오래된 지층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유골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페페가 발굴한 납석 항아리의 비문 연대와 석가의 생존 시대와는 차이가 있고, 비문의 번역과 해석에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어서, 어느 것이 석가의 유골인지 그 진위를 확정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들은 『대반열반경』의 기술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사료 가치도 높다.

  카니시카(Kanishka) 왕이나 아소카(Ashoka) 왕 등 불교를 보호한 권력자의 연대와 발굴된 유물의 연대 비교를 단서로 권력자에 의한 이장(移葬) 가능성을 포함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편 분골 이후 매장된 무덤은 점차 사람들의 숭배 대상이 되어 그곳에 불탑을 건립하게 되었다. 그 결과 불탑에 대한 숭배 양식이 각지에 널리 퍼지게 되면서 재가 신도의 신앙 활동의 중추를 이루게 되었다. 나아가 유골의 유무에 관계없이 불탑을 건립하고 숭배함으로써 공덕을 쌓는 신앙이 점차 싹트게 되었다. 더구나 건립된 불탑을 유지 · 관리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되자, 이들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막론하고 새로운 종교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석가의 “말”은 새로운 불교로 점차 흥성하여 전통적인 상좌부 불교에는 없는 가르침이 대승불교로 전개되어가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 대승불교는 서기 2세기 무렵부터 북인도에서 간다라 지방으로 퍼져나가, 실크로드를 거쳐 서역 각지로부터 동아시아까지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석가의 “말”은 사상적 변용을 거친 후 다양한 경전으로 다시 태어나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자,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에게 고하노니, 모든 것은 지나가는 법입니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수행을 완성하세요.”(나카무라, 2015:168)

  이 말을 끝으로 석가는 세상을 떠났다. 출가자로서 그의 삶은 여행으로 시작해 여행으로 끝나게 되었다. “모든 것은 생하여 멸하니, 그것이 고요해지는 상태야말로 열반의 경지”라는 그의 가르침이 임종에 즈음한 마지막 말로 수렴되고 있다.

  석가라는 한 출가자의 여행은 쿠시나가르(Kushinagar)에서 끝을 맺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말”은 후에 <불교>로 변용되어 아시아 각지로 전파되었다. 수용과 변용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 그의 “말”은 점차 많은 사람의 믿음이 되어 간 것이다.

【인용문헌】

  •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역, 『붓다 최후의 여행, 대반열반경(ブッダ最後の旅 大パリニッバーナ経)』, 岩波書店, 2015년. ; 용하, 대반열반경-한글 현토본, 담무창 옮김, 비움과 소통,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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