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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불교와 언어(5)-논쟁을 넘어서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5. 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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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4호(통권 232호), 2019. 4, 7쪽.


논쟁을 넘어서

  팔리어 원시 경전을 보면 석가는 “말”로 인한 쓸데없는 논쟁을 애써 피하려는 듯한 자세가 엿보인다. 특히 앞의 글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브라만교에 대한 직접적 비난이나 배척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나와 다투는군요, 법을 말하는 사람은 세상 누구와도 다투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현자가 ‘없다’고 인정하는 것을 나 역시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현자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나 역시도 ‘있다’고 말합니다. <중략> 수행승들이여, 예컨대 푸른 연꽃, 또는 붉은 연꽃, 또는 하얀 연꽃이 물속에 살며, 성장하고, 꽃을 피우지만 물에 오염되지 않듯이, 수행승들이여 실로 여래(如來, Tathagata)는 세상 속에서 성장하고, 극복하며 살아가지만 세상에 오염되지는 않습니다.”(나카무라, 1960:34~36)

  석가는 이처럼 제자들에게 말하며 브라만이나 다른 사상가와의 쓸데없는 논쟁을 자신을 포함하여 제자들 또한 피할 것을 가르쳤다. 또한 석가는 제자들의 질문 속에서 형이상학적인 것이나 무의미한 것에 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고 한다. 이를 무기(無記, avyākrta)라고 한다. 석가의 가르침에 관한 요체를 설명 · 해석하여 보여주는 것이 정리되어 있는 「맛지마 니까야(중아함경, 중부 경전)」 제63경에는 ‘독화살의 비유’를 이용한 ‘무기(無記)’에 관한 언급이 보인다. 제자 말룽꺄 풋다가 석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1) 세계는 시간적으로 유한/무한한가? 2) 세계는 공간적으로 유한/무한한가? 3) 생명과 신체는 동일/비동일한가? 4) 여래는 사후 존재/비 존재하는가? 그는 이러한 명제에 대해 석가가 대답하지 않으면 자신은 환속하겠다고 말하자, 석가는 그러한 것에는 일절 대답하지 않고, 다음의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타일렀다고 한다.

“말룽꺄풋다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독이 듬뿍 발린 화살을 맞았다고 하지요. 그의 친구나 동료, 친지나 친척이 그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에게 데리고 갔다고 합시다. 그런데 만일 그가 ‘나를 쏜 사람이 크샤트리아 계급(왕족)인지 브라만 계급인지, 바이샤 계급(평민)인지 노예인지 알 수 없는 한 나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네’라고 말한다면, 또 만일 그가 ‘나를 쏜 사람의 이름과 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한 나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네’라고 말한다면, 또 만일 그가 ‘나를 쏜 사람이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알 수 없는 한 나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네’라고 말한다면, 또 만일 그가 ‘나를 쏜 사람이 피부가 검은지, 갈색인지, 황금색인지 알 수 없는 한 나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네’라고 말한다면 <중략> 말룽꺄풋다여, 그 사람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말룽꺄풋다여, 이와 마찬가지로 ‘세계는 영원하다’든가 ‘영원하지 않다’든가, ‘세계는 유한하다’든가 ‘무한하다’든가, ‘생명과 신체는 동일하다’든가, ‘생명과 신체는 다른 것이다’든가 <중략>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여래 밑에서 청정 범행(淸淨梵行, brahmacariya)을 닦을 것이라고 한다면, 말룽꺄풋다여, 그는 여래에게 그 설명을 듣기도 전에 죽을 것입니다. <중략> 말룽꺄풋다여, 무슨 연유로 나는 이를 설명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말룽꺄풋다여,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청정 범행의 기초가 되지 않으며,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떠나게 하지 못하며, 정욕으로부터 떠나게 하지 못하며,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며, 마음을 고요함(寂靜)으로 인도하지 못하며, 뛰어난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며, 올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며, 열반(Nirvana)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대에게 이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나카무라, 2009:309)

  이처럼 석가는 말룽꺄풋다를 타일렀다. 세계가 영원하든 아니든, 그것들이 어떠하든 간에 현실에서 사람들이 겪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슬픔, 분노, 괴로움, 근심, 고통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가르침의 중요성을, 독화살의 비유로 석가는 깨우치게 한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에 무용하다고 할 수 있는 논쟁을 피하면서, 고뇌의 근본적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만을 말하고, 그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것에 관해서는 일관되게 침묵을 지켰다.

  이러한 석가의 가르침에서는 이율배반과 이항대립적 구도를 넘어, 사물의 본질을 성찰하고 있는 그대로의 이치를 깨닫는 것만 오로지 진력하는 그의 자세가 엿보인다.

“여기만(우리의 논리) 청정하다 말하고, 다른 모든 가르침에는 청정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일반의 각종 이설을 따르는 무리는 여러 가지에 집착하여, 각자 자신의 이치(道)라는 것을 굳게 지키면서 논하고 있지만, 여기서 누가 누구를 어리석은 자로 볼 수 있겠습니까? 다른 것(가르침)을 가지고 ‘어리석다’, ‘부정한 가르침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스스로 불화를 자초하는 것일 겁니다.

  일방적으로 결정한 입장에 서서 (타인과 다른 입장의 논리를-역자 주) 자신 마음대로 판단하고, 나아가 세상에 논쟁을 일으키기에 이릅니다. 모든 (철학적) 단정을 버린다면 세상 속에서 불화를 일으키지 않습니다.”(나카무라, 1986:195)

  다양한 논쟁과 사상적 마찰로부터의 초월과 그 질곡으로부터의 해방을, 성스러운 침묵을 통해 바랐던 석가의 태도는 당시 인도 사회에서 빛을 발했다. 석가는 각종 철학이나 사상에 대항할 새로운 관념적 지평을 개척한 것도 아니었으며, 당대까지의 전통을 전복하려는 사상적 전환을 모색하기 위해 새로운 종교를 개창한 것도 아니었다. 또한 교단의 수장으로서 권위주의적인 조직을 만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인도의 철학 관련 각종 학파가 논쟁을 일삼고, 형이상학적 명제 추구에 몰두하여 결국 이율배반에 빠져버린 상황에서, 오로지 정신적 평안과 현실적 고뇌의 극복, 그리고 그 실천을 한 명의 출가자로서 45년간 몸소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다른 종교나 전통, 사상에 대해 관용적인 석가의 자세는, 그대로 불교의 유화적 특징으로 발전·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지역이나 문화권에서 유연하게 변화되면서 불교라는 종교로서 널리 수용된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으로 인도에서는 그러한 특징으로 인해 불교 자체의 윤곽이 흐려졌고, 그것이 브라만교에 기초한 힌두적 종교 전통에 자신 역시 매몰된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인도에서 불교는 점차 힌두교에 흡수되어 결국 소멸하기에 이른다.

【인용문헌】

  • 中村元 감수, 原始仏典 第五巻 中部経典Ⅱ, 春秋社,2009년.
  • 中村元, 釈尊のことば, 春秋社, 1960년.
  • 中村元 번역, ブッダのことば スッタニパータ, 岩波書店, 1986년. ; 전재성, 『숫타니파타-붓다의 말씀』,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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