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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번역의 역사와 그 변천(2)-서사(書寫) 불경의 탄생과 대승불교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5. 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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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10호(통권 238호), 2019. 10, 5쪽.


서사(書寫) 불경의 탄생과 대승불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경 사본은 간다라(Gandhara)에서 발견되었는데, 서사(書寫) 시기는 기원 전후로 추정되고 있다. 카로슈티 문자(Kharosthi script)로 필사된 이들 사본 연구를 통해 불경 서사의 개시 시기 또한 그즈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우리아 왕조(Mauryan dynasty)의 아소카 왕의 보호 정책에 의해 불교는 교세를 확대하였고, BC 1세기 경이되자 출가자 교단이 점차 조직화되어 그들의 경제적 기반 역시 공고화되어 갔다. 재가 신도의 보시 가운데 일부는 예금으로 예치되어 그 이자가 교단의 정기적 수입이 되었고, 교단이 소유한 농지 또한 안정된 수입원이 되었다. 그 결과 승원(僧院, monastery)의 규모가 확대되었고 그 숫자도 증가하여, 포교 여행을 계속하고 있던 출가자는 점차 승원에 머물게 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출가자의 생활양식 변화는 가르침의 전승 방법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출가자가 포교 여행을 하던 시기에는 서사본을 지니고 다니면서 가르침을 전달하는 방법은 현실적이지 못했다. 역시 석가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구전으로 포교하는 방법이 제일 효율적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여행 생활을 버리고 정주 생활을 하는 단계에 이르러 전적을 유지 관리하는 것이 편리해지면서, 서사에 의한 불경 제작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란다(Nalanda)나 비크람쉴라((Vikramshila)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승원이 교리 연구기관으로 기능하기 시작하자,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가르침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필사된 경전을 자유롭게 열람하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했다. 구술 전승으로부터 서사로의 흐름은 불교사에서는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연하지만 구술 전승의 경우, 전승 내용은 전달자라는 ‘사람’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것이 된다. 전승 내용의 매체는 어디까지나 ‘사람’이기 때문에, 전달자에 대한 신뢰가 전승 내용의 신뢰성과 직결된다. 그러나 서사의 경우에는 적혀 있는 것 그 자체가 전승 내용의 매개체가 된다. 그 경전을 누가 제작했는지, 누가 낭송했는지와는 별개로 ‘텍스트’ 자체가 전승의 매개체가 된다. 이처럼 사람으로부터 텍스트로의 매체 변화는 불교사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그것은 경전 내용이 진정한 석가의 가르침인가라는, 그때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질문이었다. 이와 같은 정통성에 대한 질문은 구전의 경우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구전에서는 스승의 말을 의심하는 행위 그 자체가 전승이라는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사 텍스트의 탄생, 즉 경전의 전승 내용이 ‘사람’으로부터 분리되는 시점부터 그 자신의 정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 같은 정통성 확보를 위해 기존의 경전에 이어서 새로운 경전을 제작하는 방법이 채택되었다. 어떤 경전의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보하기 위한 새로운 경전이 필요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경전이 경전을 창출하는 연속적 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속적 운동이야말로 경전의 정통성을 지속적으로 쇄신하는 것이었기에, 일련의 경전 제작 운동은 익명의 경전 제작자들에 의해 연속적인 영위가 되어 갔다.

  부파불교 시대의 경우, 교단 내에서 가르침의 정통성을 논의할 때 그 구도가 사람 vs.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본 경전이 출현하면서부터 정통성의 논의는 사람 vs. 텍스트의 구도로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람 vs. 텍스트라고 하는 구도를 생각해보면 역시 전달자인 ‘사람’은 ‘텍스트’와 비교해서 너무나도 유한한 존재이다. 당연하지만 후세까지 남게 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텍스트’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 ‘텍스트’는 전승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독립된 것으로서 존재하게 되었고, 경전 제작이라는 부단한 작업에 의해 거듭하여 그 정통성을 획득해 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경전 제작 운동과 대승불교의 불경 탄생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통 불교의 경장(經藏) 편찬 활동이 막히자, 그 내용이 고정됨과 동시에 붓다의 말씀을 둘러싼 사상적 노력은 경장의 분석적 사고력과 체계적 구성력을 갖춘 논장(論藏)의 담당자들에게 집약되어, 불설(佛說)의 술어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나 상호관계의 정리와 체계화로 관심이 이행되어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거의 형성 활동이 막힌 경장을 담당하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붓다의 말씀이 서사 경전 속에 존재하는 것의 중요한 의의를 간파하고, 진정한 붓다의 말씀에 대한 물음과 경전의 존재 의의를 함께 담당하는 사람이 출현했다. 즉 대승 경전 출현의 기원은 전통 경전의 담당자, 즉 필경사(經師))들에게 있다.”(시모다, 2011:58)

  인도의 구두 전승에서는 그 전승 내용이 거의 변화 없이 전수되었다. 이는 브라만에 의한 베다 전승에서도 드러난다. 구전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큰 변화나 새로운 사상이 삽입될 여지는 인도의 구두 전승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사상에서는 이전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육바라밀(六波羅密, Satparamita)」 등의 새로운 사상이나 공(空), 연기(緣起), 보살(菩薩) 등 전통적 교리의 부연 해석이 전개되고 있다. 대승의 교리에서와 같은 상당히 이질적인 요소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에는 역시 개개인의 번뜩임과 새로운 발상이 반영될 필요가 있는데, 서사라는 전승 방법이 전제가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시모다 마사히로(下田正弘)는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그 경전 제작 운동이 시작되자 이러한 경전에서는 점차 경전 서사의 공덕 역시 적극적으로 설파되어 갔다. 대승 경전의 탄생에는 전통 교단 내에서의 상술한 전승 방법의 변화와 아울러 ‘텍스트’ 배후에 숨어있는 이름 모를 필경사들의 존재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경전이 경전을 낳게 된 결과 대승에서는 다종 다양하고 방대한 경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내용 자체가 교리적 변화를 유도하여 서사 경전은 확산되어 갔다. 한편 전통 교단 내에서 필경사들은 경 속의 말씀 자체에 몰두하여 그 속에 자신의 종교적 깨달음과 신앙 고백의 한 형태로 새로운 해석을 남기면서, 현실 세계로 돌아와 문자화 과정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대승 불경이라는 새로운 ‘텍스트’를 계속 만들어 냈다. 그 결과 ‘텍스트’ 밖에서 전개되고 있던 불교의 다양한 활동 중 일부가 ‘텍스트’에 의거하여 교정, 집약되어 갔다. 이를 포섭하면서 전혀 이질적이면서 새로운 복합적 개념으로서 전개, 조직화되었던 것이 후일 대승불교라 불리기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인다.

【인용문헌】

시모다 마사히로(下田正弘), 「대승불교의 탄생(経典を創出する─大乗世界の出現)」(高崎直道 감수, 『シリーズ 大乗仏教 2 大乗佛敎の誕生』, 春秋社,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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