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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번역의 역사와 그 변천(6)- 중국의 불경 수용과 의경(疑經)의 상관관계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5. 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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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6호(통권 246호), 2020. 6, 6쪽.


중국의 불경 수용과 의경(疑經)의 상관관계

  석가의 “말”이라는 정통성을 내세우며 중국에서 독자적으로 제작된 경전을 의경(疑經) 또는 위경(僞經)이라 부른다. 석도안(釋道安, 314~385)은 이들을 『의경록(疑經錄)』으로 정리하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천축(天竺, 인도-역자 주)의 불교 교단에서의 전법(傳法) 방법은 모두 스승으로부터 직접 이어받는 것이다. 같은 스승으로부터 10회 혹은 20회 반복하여 전수된다. 만약 한 글자라도 다른 부분이 있으면 스승과 제자가 함께 힘겹게 맞춰보아서 틀린 부분을 정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중략> 불교 경전이 중국(진(晋) 시기)에 들어오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악행을 좋아하는 자는 모래를 금이라 말하며 새치름한 얼굴을 하고 있다. 틀린 부분을 고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진위를 알 수 있을 것인가?”(오치아이, 2013:168)

  석도안은 이렇게 말하며 정통성이 의심되는 경전을 판별하였다. 또한 당 시대의 승려 지승(智昇)은 『개원 석경록(開元釋經錄)』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위경이란 그릇된 생각(邪見)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진경(眞經)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대사(大師, 석가)가 자취를 감춘 지 2천 년이 다되어 가니 마교(魔敎)가 다투어 흥하여 정법은 완전히 쇠퇴하였다. 완고하고 어리석은 무리는 잘못된 견해와 미혹한 마음(迷心)으로 모든 경전을 위조하여 세상(流俗)을 속이고(誑惑), 요사스러운 말(邪言)이 정의를 어지럽히고 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오키모토, 2010:294)

  석도안은 의경, 지승은 위경이라 부르고 있는 이 둘을 함께 “의위경(疑僞經)”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글에서는 광의의 개념으로서 의경이란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이러한 경록의 편찬 목적 가운데 하나는 중국 불교에서 의경을 배제하는 것으로, 석가의 진정한 가르침을 바란 경록 편찬자들의 비분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경록에서 진경과 의경을 구별하는 판단 기준의 하나는 경전이 인도에서 기원한 것인가였다. 따라서 석가가 직접 설한 것이 아닌 대승 경전의 한역본 역시 인도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여겨, 배제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또한 진위 판별 기준 역시 경록마다 달랐던 듯하다. 예컨대 『인왕 호국 반야 바라밀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의 경우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에서는 구마라집이 번역한 진경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중경 목록(衆經目錄)』 제7권에서는 구마라집의 번역을 의심하며 의경으로 분류하고 있다.(오키모토, 2010:296)

  어쨌든 이러한 의경 배척운동은 경록 편찬자들의 노력으로 지속되었는데, 여러 경록에 수록된 의경의 수를 비교해보면, 385년 석도안이 작성한 신집 안공 의경록(新集安公疑經錄)』의 의경은 26부 30권이었으나, 510년 경 승우(僧祐, 445~518)가 쓴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에 수록된 안공 의경록(安公疑經錄)』에는 46부 56권, 730년 지승(智昇)이 쓴 『개원 석경록』에는 406부 1,075권이 의경으로 기록되어 있다.(오키모토, 2010:292) 역경 편찬자들에 의한 견실한 노력과는 반대로 의경의 숫자가 증가한 배경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에서 어떻게 변용 · 수용되었는지를 이해할 중요한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경이 다수 제작된 이유는 그것이 일부 혹은 다수 중국인에게 인기가 있었던 까닭에서 임은 분명하다. 그 사실은 동시에 인도에서 전래한 불교의 직역이 만족스럽지 않고,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소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의미한다.

  불교 수요에서 보이는 중국인의 사유 방법의 특징을 상세하게 분석한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1912~1999: 일본 최고의 불교 학자-역자 주)는 동양인의 사유 방법에서 추상적인 것보다 구체적 지각(知覺)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화엄종의 학승 규봉 종밀(圭峯宗密, 780~841)은 인간의 근원적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아뢰야식(ālaya vijñāna)에 관해, 청정한 정신을 ‘〇’, 오염된 망심(妄心)을 ‘⯄’의 기호로 표현하고 참(〇)과 거짓(⯄)의 화합을 토대로 인도 전래의 난해한 추상적 교리를 시각적 표상과 음양론에 기대어 설명하려 했다.(나카무라, 1988:34~37) 그 이유에 대하여 나카무라는 중국어의 표의 문자적 성격이 초래하는 언어의 표현적 한계와 언어 사용 규칙의 불철저함으로 인한 언어의 비논리성이 추상적 사색에 익숙하지 못한 특징을 낳았다고 주장하였다.(나카무라, 1988:48~55) 이는 인도 사상이 논쟁에 의해 논리적으로 발전해온 특징과 정반대로, 인도 특유의 번쇄한 고찰 등은 중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나카무라는 중국인의 사유 방식의 특징으로 인간 본위의 현실 · 현세주의적 경향 또한 지적하고 있다.

“인도인은 ‘있음(being, das Sein)’을 ‘bhāva’라는 낱말로, ‘존재’ ‘감정 · 욕망 등을 가지고 현실의 인간으로서 살아 있음(existence, Existenz)’을 ‘bhava’라는 낱말을 사용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은 이 둘을 모두 ‘유(有)’로 번역하고 있다. 위의 두 의미는 하나의 어근인 ‘유(有)’에서 근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역 불경에서 양자는 구별되지 않는다. 나아가 ‘유(有)’라는 낱말의 일반적 용법을 보면 ‘존재하는 것’과 함께 ‘인간이 소유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모든 것을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여 인간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이란 것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나카무라, 1988:157~158)

  이러한 특징은 추상적 사유보다 구체적 · 개별적이며 보다 간결하고 명료한 현세주의적 경향을 보여주는데, 중국인은 불교의 이해에 있어서도 확실히 현세에서의 이익을 중시함을 의미한다 하겠다. 기도와 주술에 의한 현세에서의 이익을 바라는 것이 대다수의 신앙 동기이며, 해탈에 관해서도 끝없이 윤회를 반복하면서 수행을 지속한다고 하는 인도적 시간관에 따른 순환적 지향성이 없고 금욕적 생활 방식도 낯선 것이다. 즉 중국인은 불교 수용 과정에서 현세에서의 깨달음 혹은 즉각적 · 즉물적 구원의 실현을 요구하며, 현실 세계를 긍정적으로 파악하는 불교로 변용시켜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인도 불교의 특징과 정반대에 위치하는 것으로, 사유방식의 차이가 중국에서 불교의 변용을 초래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오키모토는 “의경이란 경전이라는 전통의 힘을 빌려 번잡한 사상을 단순화하고, 현세주의적 이익을 중시하는 점에서 그 특성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특성은 크게 양분된다. 하나는 세속적 이익의 추구이며 또 하나는 사상 · 실천의 간소화이다”(오키모토, 2010:299)라고 지적하면서, 중국에서 불교의 변용과 의경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에서 불교 이해의 한 형태가 의경으로 결실을 맺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중국인들의 정신성에 적응하면서 사회에 침투하여 불교 수용의 포석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인용문헌】

  • 오키모토 카쓰미(沖本克己), 「経録と疑経」, 『新アジア仏教史 06 仏教の東伝と受容』, 佼成出版社, 2010.
  • 오치아이 토시노리(落合俊典), 「疑教をめぐる問題 ─経典の物語化と改作」, 『大乗仏教のアジア』, 春秋社, 2013.
  •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シナ人の思惟方法 東洋人の思惟方法 Ⅱ』, 春秋社,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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