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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번역의 역사와 그 변천(8)- 도안(道安)의 번역관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5. 2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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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10호(통권 250호), 2020. 10, 5쪽.


도안(道安)의 번역관

  인도와 중국이라는 이질적 대상 간의 사상 교섭으로서의 한역(漢譯)은 두 언어 사이의 차이나 표음 문자에서 표의 문자로의 변환이라는 언어적 제약, 나아가 다양한 경전이 무작위로 전래되는 특수한 상황이 많은 혼란을 초래한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안(道安, 314~385)은 한역 당시 유의해야 할 점을 정리하여, 경전 서문(經序)에 그의 지론을 제시하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권 8의 「마하발라야바라밀경초서(摩訶鉢羅若波羅蜜経抄序)」에 기록된 「오실본 삼불역(五失本三不易)」에서 그의 번역관을 이해할 수 있다.

  오실본(五失本)이란 번역상 본래의 형식을 잃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다섯 가지 항목을 의미한다.

첫째, 번역할 경우 단어의 배열 순서에서 호문(胡文, 인도 혹은 서역의 문장-역자 주)과 역문이 서로 반대가 되어버린다. 둘째 호경(胡經, 인도 혹은 서역 문자로 된 경전-역자 주)은 질박함을 으뜸으로 여기지만 진인(秦人, 중국인-역자 주)은 수식(文飾)을 좋아하여 번역하면 본연의 질박함을 잃게 된다. 셋째, 호경에는 반복이 많지만 번역문은 반복되는 부분을 걷어내게 된다. 넷째, 호경에는 같은 내용을 거듭 다른 말로 표현하기에 일견 혼란하게 생각되는 경우가 있으나, 번역 시에는 이를 대량 삭제하게 된다. 다섯째, 호경은 단락이 바뀔 때마다 이미 서술한 사항을 반복하지만, 번역 시에는 이를 모두 제외하게 된다.
(譯胡为秦有五失本也:一者胡語盡倒, 而使從秦, 一失本也. 二者胡經尚質, 秦人好文, 傳可衆心, 非文不合, 斯二失本也. 三者胡經委悉, 至于叹咏, 叮咛反復, 或三或四, 不嫌其烦, 而今裁斥, 三失本也. 四者胡有義說, 正似亂辭, 尋說(别本作“檢”)向語, 文無以異, 或千五百, 刈而不存, 四失本也. 五者事已全成, 將更傍及, 反腾前辭, 已乃后說, 而悉除此, 五失本也.)(오우초, 1983:8)

  도안은 이렇게 다섯 가지 항목으로 한역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원문의 형식을 잃게 됨을 밝히고 있다. 이들에 한해서는 본의는 아니지만 중국인을 위해 용인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도의 각종 언어를 중국어로 번역할 경우 어순은 아무래도 변화하게 마련이다. 이는 언어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점이다. 다음으로 원문은 질박하지만, 중국인은 문식과 전아함(文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 번역문에 수식이 많이 사용됨으로써 원문의 소박함을 잃게 된다. 중국인은 문아(文雅)함을 중시하는 까닭에 원문의 질박함이 경전의 가치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원문에서는 석가나 보살에 대한 찬양을 위해 같은 표현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 반복을 싫어하는 중국인의 취향을 고려하여 의미상 문제가 없는 부분은 생략하였다. 인도 언어로 된 종교 문헌의 특징으로서 반복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는 구술을 기본으로 하는 교리 전달의 전통과 언어의 음과 소리 그 자체에 근거한 신비적 힘의 재현과 그 신앙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잦은 반복은 중국인이 좋아하지 않아서 자의적으로 삭제된 듯하다. 이러한 경향은 넷째, 다섯째 항목에서 공통되고 있다.

  한편 도안은 “삼불역(三不易)”에 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번역상 ‘불이(不易)’ 즉 쉽지 않은 세 가지로 해석하는 측과 ‘불역’ 즉 고쳐서는 안 되는 세 가지로 해석하는 측이 있는데, 연구자에 따라 판단이 나뉘고 있으나 여기서는 오우초 에니치(横超慧日)의 논지를 바탕으로 ‘삼불역’의 견지에서 도안의 번역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반야경』은 부처가 설한 것으로 성자는 반드시 때를 고려하여 말씀하심으로 시대에 따라 습속이 변한다고 해서 옛 고아함의 입장에서 설법하신 바를 오늘날의 습속에 맞춰 바꾸는 것은 알맞지 않다. 둘째, 성인은 범인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거리가 있으므로 상고(上古)의 미묘한 가르침을 말세인 오늘날에 맞추는 제멋대로의 방식은 용납할 수 없다. 셋째, 석존의 곁을 떠난 적이 없는 불제자 아난과 가섭조차도 결집 당시에 조금이라도 과하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며 근신하였다. 그런데도 부처가 떠난 지 천년이 지난 지금, 나고 죽는 범우(凡愚)의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경전에 취사를 가한다면 무법(無法) 무례(無禮)이며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하겠다.(《般若经》三達之心覆面所演, 聖必因时, 时俗有易, 而删雅古以適今时, 一不易也. 愚智天隔, 聖人叵階, 乃欲以千歲之上微言, 傳使合百王之下末俗, 二不易也. 阿難出經,去佛未久, 尊者大迦叶令五百六通迭察迭書, 今离千年而以近意量裁, 彼阿羅漢乃兢兢若此, 此生死人平平若此, 岂将不(别本加一“以”字)知法者勇乎, 斯三不易也.)(오우초, 1993:9~10)

  위의 해석에 따르면 도안의 번역관은 원문에 대한 경건한 충실함과 구도심을 중시하여 “삼불역”을 통해 의역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상술한 “오실본”에서는 어느 정도의 변용을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안 이전에는 한역 문체에 관해 중국어의 품격이나 독서의 용이함을 중시하여, 수사적 표현(文飾)을 많이 사용하고 반복을 삭제하는 “문파(文派)”와 질박하고 솔직한 축어역을 추구하고 직역을 중시하는 “질파(質派)” 간에 왕성한 논쟁이 벌어졌다.(오우초, 1958:219~236) 이러한 논의에 의해 번역 자체에 관한 논리도 성숙해갔다.

  질파는 원전의 본의를 충실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에 전념하여 문장의 수사적 표현 등은 일체 불필요하다고 여겨, 질실(質實)한 문체를 이용한 번역을 중시하였다. 이 경우 원문에 충실하기 위해 음을 모사하는 음차어를 너무 많이 사용하여 글의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거나, 직역으로 원문의 의미가 통하지 않는 부분은 번역하지 않고 그냥 누락하는 경우조차 있었던 듯하다. 당시 중국인에게 질파의 번역문은 원문 중시가 원인이 된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번역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문파는 우아한 아문(雅文)을 많이 사용하여 어느 정도 화려한 문장을 사용하여 격조 있는 달의(達意) 지향의 문체를 중시하여 의역을 용인하는 자세를 취한다. 중국에서는 특히 전아한 문장을 좋아하는 성격상, 후자인 문파의 번역이 널리 이용되기에 이른다. 이 문파의 세련된 번역문에 의해 중국인의 기호에 적합한 불경이 사회에 널리 인정되면서 의미도 통하게 되었다. 하지만 교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원문에 대한 충실함이 결여된 역문으로, 교리의 변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번역관의 대립은 인도 언어로 된 원문의 어휘를 의역할 것인지, 아니면 음차하여 음역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Buddha’를 “각자(覺者)”로 번역하는 것이 의역이고, “불타(佛陀)”로 번역하는 것이 음역이다. 표의 문자인 한문의 경우 ‘각자’ 즉 깨달은 자라는 번역어로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음차인 ‘불타’의 경우 원어의 음에는 가까우나 그 의미와 개념 전달은 매우 어려워서, 감각적이며 정서적인 이해에 머물기 때문에 해석을 통한 보완이 필요하게 된다. 당연하지만 문질빈빈(文質彬彬), 즉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그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번역이 이상적이지만 실제 번역 상황에서 이 둘은 양립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디까지나 원문에 대한 충실함을 따라서 다소 읽기 어렵더라도 직역을 할 것인지, 아니면 원문으로부터 다소 멀어질지라도 전체적으로 의미가 통하는 의역을 할 것인가라는 문질(文質) 논쟁에서는 실제적 번역론이 양극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앞에서 도안은 우직한 직역을 배척하고 문파를 용인하는 번역관으로 “오실본”을 제시하고, 또 동시에 극단적인 의역을 경계하여 원문에 충실한 질파의 자세를 지지하는 번역관으로 “삼불역”을 써서 양자 간의 조화를 모색하는 번역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희망적 번역관은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에 자주 직면하는 번역가에게는 공염불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를 통해 지향해야 할 번역의 경지를 명확히 의식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도안은 한역 불경에 정통하여 경록(經錄)을 정리하고 많은 「경서(經序)」를 남겼다. 그는 한역에 있어 지도적 역할을 맡았지만 실제 번역에는 종사하지 않았다. 번역자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번역자가 번역에 몰두하다 빠지게 되는 함정을 꿰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용문헌】

  • 横超慧日, 『中国佛教の研究 第一』, 法蔵館, 1958.
  • 横超慧日, 「仏教経典の漢訳に関する諸問題」, 『東洋学術研究』 22권 2호 통권 105호, 1983, p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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