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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번역의 역사와 그 변천(10)- 구마라집과 불경의 한역 2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5. 2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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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2호(통권 254호), 2021. 2, 5쪽.


구라마집과 불경의 한역-2-

  석가는 가르침을 명문화하지 않고 구술 언어(parole)만으로 전달하였다. 후세에 그 파롤이 결집(Sangiti) 과정을 거쳐 점차 서기 언어(écriture)를 통해 불경으로 보존되었다. 중국에서는 그 에크리튀르가 재차 구마라집 등의 역주(譯主)-번역가-를 매개로 하여 파롤로 변환되었고, 그 파롤로부터 한역 불경이라는 에크리튀르가 생겨났다.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가 서로 교차하면서 석가의 말이 ‘이야기’되고 ‘읽힘’으로써, 각자의 내면으로 침투하여 신앙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한역 과정에서 역주의 파롤은 석가의 “성스러운 말씀”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외래의 불교는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어갔다. 이 과정에서 석가의 말이 실존적인 자기 자신을 성립시키는 세계 그 자체로 승화하고, 또 세계 내 존재로서 자신이 그 말들로 채워져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자신을 불교도로서 현실 세계 속에 위치 짓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 한역 불경이라는 잠재적인 힘으로서의 에크리튀르였다고 생각된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경전의 수는 『경록(經錄)』(경전 목록)에 따라 다르지만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에 따르면 35부(部) 294권이다. 그는 요흥(姚興)의 요청에 따라 이미 유포되어 있던 대승 경전의 개역에 나섰다. 그의 개역은 통설로 퍼져 있던 해석을 뒤집었다. 예를 들어 법화경(法華經)은 둔황(敦煌) 출신의 축법호(竺法護, Dharmarakṣa)가 286년 『정법화경(正法華經)』으로 한역하였으나, 구마라집은 406년에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란 제명으로 다시 한역하였다. 구마라집은 이 경전의 제목을 ‘정법’에서 ‘묘법’으로 고치고 있다. 이 제목의 산스크리트어는 ‘Saddharma-puṇḍarīkasūtra’로 직역하면 올바른 법(Saddharma) 흰 연꽃(puṇḍarīka) 경전(sūtra)이 된다. 축법호는 제목을 자의(字義)에 따라 번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산스크리트어의 정교한 문법을 이해하는 것이다. 파니니(Pāṇini)의 문법서 『아쉬타드햐이(Aṣṭādhyāyī)』와 그 주석서인 『카쉬카부르띠(Kāśikāvṛttī)』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puṇḍarīka’는 동격 한정 복합어의 뒤에 올 경우, 앞의 말을 비유적으로 수식하는 낱말이 된다. 이 경우 ‘Saddharma’는 피수식어가 되고 ‘puṇḍarīka’는 수식어가 된다. 불경에는 ‘puṇḍarīka’ 이외에도 푸른 수련(Utpala), 붉은 연꽃(Padma), 흰 수련(Kumuda)에 관한 언급도 보이고 있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 흰 연꽃 즉 ‘puṇḍarīka’로, ‘puṇḍarīka’에는 “가장 뛰어난”이라는 비유적 의미가 있다.

  따라서 “흰 연꽃과 같이 가장 뛰어난 올바른 법”이 파니니 문법에 따른 해석이 된다. 축법호의 번역은 문자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잘못돼 번역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구마라집은 동격 한정 복합어로서의 ‘puṇḍarīka’의 비유 표현을 고려하여 일부러 ‘묘(妙)’ 자를 붙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구마라집은 법화경 「서품(序品)」에서 “가장 뛰어난”이란 낱말 ‘Vara’에 대해서도 ‘묘(妙)’ 자로 한역하였다.(우에키, 2011:89) 모든 경전은 올바른 법(Saddharma)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중에서도 이 경전을 ‘가장 뛰어난’ 경전이라고 그는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법화경의 내용에 비춰보더라도 일승(一乘) 사상과 구원실성(久遠實成) 사상을 기초로 다양한 교리가 조화되어 전개되고 있으며, 여러 학파의 이해를 초월한 의미 세계가 묘사되고 있다. 구마라집은 법화경의 정신을 응축하여 이를 ‘묘’라는 한 낱말에 담으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묘’는 만물의 근원을 ‘도(道)’로써 형용하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는 노장사상을 기초로 법화경의 ‘법’을 현묘하고 불가사의한 것, 인간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적인 ‘법’으로 이해시키려고 구마라집이 일부러 개역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어서, 종종 구마라집의 번역은 본래의 의미를 벗어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가나쿠라, 1972:448)

  결과적으로 이 “묘법”으로의 개역은 중국인에게 받아들여졌고, 이후 법화경 이해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구마라집이 의도한 것이라 규정할 수는 없지만 ‘묘’에 함의된 노장사상의 영향은 법화경 이해를 더욱 신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또 구마라집 이전의 한역 경전 첫머리는 “문여시(聞如是)”로 되어 있다. 이는 석가와 항상 동행하며 누구보다 많은 가르침을 들었던 아난다(Ananda)가 석가 입멸 이후의 결집 당시 “나에게 이렇게 들렸습니다. 어느 때(날) 세존께서는~(Evaṃ mayā śrutaṃ ekasmin samaye Bhagavān···)”이라고 석가의 가르침을 추억하며 구술한 것을 그 기원으로 삼는다. 산스크리트어에서는 ‘나에게(mayā)’라고 되어 있는 까닭에 구마라집은 이를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번역하였다. 구마라집 이전에는 ‘나(아(我))’를 번역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우에키, 2011:109)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인 “Anātman”은 ‘자신(ātman)’과 부정 접두어인 ‘an’의 복합어로, 본래 집착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는 것을 경계하고 법에 의한 진정한 자기를 깨우칠 것을 설파한 가르침이다. 어떠한 실체나 영혼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상정 자체를 부정하고 대상으로서의 ‘나(我)’ 또는 ‘내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한 실천적인 가르침이지만, 구마라집 이전에는 부정 접두어 ‘an’을 ‘무(無)’로 번역하여 “무아(無我)”라는 번역어를 통해 자기 존재의 부정이라는 교리가 성립하게 된다. 이 교리와의 정합성 때문에 일부러 ‘아(我)’를 삭제하고 “문여시(聞如是)”로 번역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마라집은 부정 접두어인 “비(非)”를 사용하여 이를 “비아(非我)”로도 번역하고 있다.(우에키, 2011:45) 구마라집은 'Anātman'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을 했던 까닭에 단순히 상술한 이유에서 ‘아(我)’를 삭제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이렇게 나에게 들렸다(Evaṃ mayā śrutaṃ)”의 뒤에 이어 “어느 때(ekasmin samaye)”라는 문구가 경전에 따라서는 앞에 위치하여 “어느 때(날) 이렇게 나에게 들렸다, 세존은···”의 형태나 혹은 전후에 동시에 위치하여 “어느 때(날) 이렇게 나에게 들렸다. 그때 세존은···”이 되는 경우도 상정하여, 원문의 어순 그대로인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번역을 채택한 것이라 생각된다.

  구마라집 이후에는 이 번역이 정착되어 갔다. 구마라집은 역장(譯場, 역경장-역자 주)에서 중국인 사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고 한다.(기무라, 1997:251) 그 영향도 있어서 그는 달의(達意)에 중점을 둔 의역을 중시하여 리듬감이나 격조 등과 같이 중국인의 기질에 맞는 번역을 염두에 두었던 듯하다. 경전은 본질적으로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번역문에서는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를 석가의 “성스러운 말씀”으로 듣고 이해하게 할 것인가라는 포교자로서의 배려가 느껴진다.

【인용문헌】

  • 우에키 마사토시(植木雅俊), 『仏教、本当の教え』, 中央公論新社, 2011.
  • 가나쿠라 엔쇼(金倉圓照), 「法華経における法護と羅什の訳語」, 坂本幸男 編 『法華経の中国的展開』, 平楽寺書店, 1972.
  • 기무라 센쇼(木村宣彰), 「羅什と玄奘」, 高崎直道 他編, 『仏教の東漸 東アジアの仏教思想Ⅰ』, 春秋社,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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