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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번역의 역사와 그 변천(11)- 구마라집의 번역관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5. 29.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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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4호(통권 256호), 2021. 4, 5쪽.


구라마집의 번역관

  석가가 설파한 세속(世俗) 부정의 가르침은 중국의 수용 과정에서 현세주의적으로 변용되어 갔다. 구마라집의 번역은 그 변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번역은 종종 창작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는 “개변을 가하거나 혹은 그 자신의 사상을 집어넣고 있다”(나카무라, 1995:181)며, 재가(在家)의 유마거사(維摩居士)를 주인공으로 삼아 재가 불교의 우위성을 설파한 대승 계열의 경전 『유마경(維摩經)』 가운데 한 구절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티베트의 번역은 ‘무명(無明)의 더러움이 다함으로 늙음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더러움 역시 다하니, 이것이 연기(緣起)가 필요한 바이다. 여실히 깨닫게 되니 이것이 일체 번뇌를 사멸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라고 되어있는데, 이 문장에 한정해서 보면 티베트 번역문은 현세적 · 세속적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런데 구마라지바의 번역은 우리의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긍정하고 있다. 즉 ‘연기가 바로 도량이다. 왜냐하면 무명에서 늙음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십이지분(十二支分)이 다하는 바가 없으므로, 모든 번뇌가 바로 도량이다. 왜냐하면 번뇌를 통해 여실한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에’라고 되어 있다.”(나카무라, 1995:182)

  이처럼 구마라집은 모든 번뇌에 의해 이 세계에서 미혹에 빠진 상태를 깨달을 수 있음으로 이를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나아가 현실적인 미혹의 세계도 긍정하고자 한다.

  또 티베트 번역문에서 “왕의 쾌락과 주권(主權)에 대한 욕망을 거두었기에 모든 왕자 가운데에서도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다”라는 문장을, 구마라집은 “충효(忠孝)를 보여준 까닭에 모든 왕자 가운데에서도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다”라고 번역하고 있다.(나카무라, 1995:190) 티베트 번역은 욕망의 부정을 강조하고 있음에 반해 구마라집은 중국적인 ‘충효’라는 인륜 관계에서 의무의 긍정을 강조하고 있다. 『유마경』의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원문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진 티베트 번역문과 비교해 볼 때, 구마라집의 번역에는 분명한 개변이 보인다.

  산스크리트어에 관해 모어 화자와 같은 감수성을 지녔던 구마라집은 산스크리트 원문에 대한 이해가 앞선 까닭에 자신의 번역에 관해 매우 비관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축의 국속(國俗)은 매우 문장의 형식(文製)을 중시하니, 그 형식이 마치 오음(五音)이 현악기(絃)에 들어맞듯 문장의 체제와 운율((宮商體韻))이 좋아야 한다. 무릇 국왕을 알현하는 자리에서는 반드시 덕을 기려야만 한다. 부처를 대하는 의식에서는 노래(歌歎)로 존경을 표한다. 경전 속의 게송(偈頌)은 모두 이런 형식이다. 다만 범어를 다시 진(秦, 중국-역자 주)의 언어로 바꾸게 되면 그 조울(藻蔚, 풍격과 문체-역자 주)을 잃어버린다. 대의는 얻더라도 특히 문체는 멀어진다. 이는 음식을 씹어 사람에게 주는 것처럼 헛되이 맛을 잃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토해버리게(嘔噦) 되는 것과 같다.”(오우초, 1958:16)

  구마라집은 이렇게 서술하여 산스크리트 원문의 게송 등, 그 문체가 지니는 미적 감각은 번역 불가능하며, 번역하게 되면 밥을 씹어서 사람에게 주는 것과 같이 맛도 없고 구토를 일으킨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 그는 “말이 드러나면 이치가 잠기게 되고, 사물이 가까워지면 취지가 멀어진다(語現理沈, 事近旨遠)”(오우초, 1958:16~17)라고도 언급하며, 용케 표현하더라도 오히려 진리를 덮거나, 직역하게 되면 원문의 본뜻과 멀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번역 불가능론의 입장에서 되도록 전체적 의미를 통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비록 원문과 달라지더라도 수용될 수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그는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의 주석서인 『대지도론(大智度論)』을 번역할 당시 중국인이 번쇄한 것보다 간결한 것을 좋아하는 이유로 원문의 3분의 2를 삭제하여 백 권으로 번역하였다.(기무라, 1997:254) 그는 중국어의 전통을 중시하는 중국인 사문(沙門)의 의견을 따라서 보다 세련된 한역 경전을 만들고자 하였다.


  위에서 설명한 구마라집의 지적은 번역의 한계를 가장 가까이서 체감하는 번역자가 종종 맛보는 감각이다. 원문의 이해와 두 언어의 능력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극복 불가능한 차이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독자의 구토를 유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갈등에 빠지게 되는 것은 번역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구마라집은 역경사에 공적을 남긴 위대한 역경승으로서의 모습과 함께 사실 파계승으로서의 면모도 있다. 전진(前秦)의 장군 여광(呂光, 338~399, 후량(後涼)의 초대 황제)의 포로가 된 그는 불우한 시절을 보내던 중 여광에게 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느 날 여광은 구마라집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밀실에 여성과 함께 가둬버렸다고 한다.(오카야마, 2010:165) 그 결과 부득이하게 여성과 정을 통하게 되었고, 구마라집은 파계승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이는 마치 출가자였던 그의 아버지 구마라염(鳩摩羅炎)이 쿠차 여왕의 청을 받아 파계하고 결혼한 모습과도 겹친다. 더욱이 구마라집은 그렇게 얻은 아이를 왕과의 박희(搏戲)를 통해 죽임을 당하는 비참함도 맛보게 된다. 계율을 지키고 있다가 얄궂게도 자신의 행실로 아버지와 같은 파계승이 되고, 세속적인 생활 속에서 인생의 쓰라림과 실의를 경험했던 상황과 그 과정에서 성숙해 간 신앙심이 더 많은 중생의 구제를 설파한 대승불교로 그를 몰아갔을지도 모른다.

  『출삼장기집(出三蔵記集)』 권 14의 「구마라집전(鳩摩羅什傳)」에는 “비유컨대 더러운 진흙탕(臭泥)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과 같으니, 다만 연꽃을 취하고 더러운 진흙탕은 취하지 말라”라는 그의 말이 남아있다. 연꽃을 가리키는 낱말인 산스크리트어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Pankajam”은 ‘진흙(Panka)’과 ‘탄생(jam)’의 복합어로, 진흙 속에서 태어남에도 불구하고 흙탕에 빠지지 않고 전혀 진흙에 오염되지 않는 맑은 연꽃을 비유적으로 의미한다. 그는 파계승으로서의 자신을 진흙탕에 비유하고, 한역 과정에서 자신의 고뇌를 통해 한 줄 한 줄 뽑아낸 번역문을 진흙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에 비유하고 있다. 파계승의 오명을 짊어지고 대승불교에 구원을 청하여 불경 번역에 목숨을 건 그의 비애와 경건한 신앙심이 그의 말속에서 스며 나오고 있다. 그에게 번역이란 포교를 위한 작업임과 동시에 자신의 구원과 직결된 신앙 실천이었던 것은 아닐까. 당연하지만 그의 번역관은 자신의 경험과 사상에 기초하여 실의와 고뇌를 통해 숙성된 자신의 신앙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종교 문헌을 번역할 경우 번역자의 신앙은 번역에 큰 영향을 미친다. 때로 원문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 번역된 “성스러운 말씀”에는, 원문에 내포된 진리의 부활에 도전하는 번역자의 구도 정신과 신앙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용문헌】

  • 오우초 에니치(横超慧日), 「鳩摩羅什の翻訳」, 『大谷学報』 37권 4호(통권136호), 1958.
  • 오카야마 하지메(丘山新), 「鳩摩羅什の破戒と訳業をめぐって」, 『新アジア仏教史 06 仏教の東伝と受容』, 佼成出版社, 2010.
  • 기무라 센쇼(木村宣彰), 「羅什と玄奘」, 高崎直道 외편, 『仏教の東漸 東アジアの仏教思想Ⅰ』, 春秋社, 1997.
  •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中村元選集 第21巻 大乗仏教の思想』, 春秋社,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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