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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번역의 역사와 그 변천(14)- 현장(玄奘)의 번역관 : 오종불번(五種不翻)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5. 3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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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10호(통권 262호), 2021. 10, 5쪽.


현장(玄奘)의 번역관-오종불번(五種不翻)

  번역을 시작한 현장은 우선 대보살장경(大菩薩藏經)의 한역에 착수하였다. 이후 대망의 십칠지론(十七地論, 유가사지론)의 번역에 착수하여 2년 만에 완료하고 대반야경(大般若經), 섭대승론(攝大乘論), 구사론(俱舍論), 대비파사론(大毘婆沙論) 등 다수의 주요 불경을 한역한다. 그 총수는 75부 1,335권에 달한다.(가마타, 1999:295) 이는 축법호(竺法護), 구마라집(鳩摩羅什), 진제(眞諦), 의정(義淨), 불공(不空) 등 다른 대표적 역경승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양이다. 이 성과는 현장의 탁월한 능력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역장(譯場, 역경장)의 특징이 그때까지의 것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에서도 기인한다. 예를 들면 구마라집의 역장에서는 출가자와 재가자를 불문하고 수천 명의 불교도가 모여 한역 과정에서 경전 강의가 이루어졌던 까닭에, 번역 속도가 그다지 나지 않았다. 당시 중국에서 교리 수용을 촉진하기 위한 역장의 공개와 강경(講經, 경전 강의-역자 주)은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그 번역량은 현장의 한역과 비교해 1/4에 불과했다. 한편 현장의 역장은 비공개로 매우 제한된 소수 정예의 학승들이 각각 증의(証義, 산스크리트어의 의미 확인), 필수(筆受,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어로 변환하는 일), 철문(綴文, 번역문의 편집) 등의 역할을 분담하여, 산스크리트어를 일단 한자로 축자적으로 변환하고, 그 낱말을 문맥에 맞춰 재배치하여 한문답게 다듬는 방법으로 효율적인 역경 작업이 이루어졌다. 현장은 역경과 강경을 분리하여 낮에는 비공개 역장에서 역경 작업에 전념하고, 밤에는 경전을 강의하였다.(기무라, 1997:252) 구마라집은 대지도론(大智度論) 백 권을 번역하며 3년 하고도 수개월이 필요했다. 반면 현장은 같은 대표적 논서(論書)인 십칠지론 백 권을 겨우 1년 만에 번역해냄으로써, 구마라집보다 약 세 배 이상의 속도로 번역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기무라, 1997:251)

  현장의 한역은 치밀하고 원문에 충실한 것으로 종종 지적되어왔다. 구마라집은 달의(達意) 지향의 의역을 중시하였으나 현장은 엄밀한 직역에 치중했다. 그는 특히 번역하지 않고 음을 모사한 음사어(音寫語) 사용에 관한 독자적 기준인 “오종불번(五種不翻)”을 제시했다. 이는 음사어에 관한 다섯 가지 번역 규범이다. 실은 현장 이전의 한역에서는 번역인지 음사인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번역자 각자의 규준에 맡겨진 상태였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현장은 음사어를 이용하는 다섯 가지 경우를 정의하였다. 이 다섯 종류는 우선 첫째, 비밀인 경우(비밀고(秘密故)), 둘째, 뜻을 여럿 품고 있을 경우(다함고(多含故)), 셋째, 이 지역에 없는 것일 경우(차방무고(此方無故)), 넷째, 고례(古例)에 따르는 경우(순고고(順古故)), 다섯 번째, 생선(生善)을 존중하는 경우(생선존중고(生善尊重故))에는 음사한다는 기준이다.(무라다, 1975:52)

  첫 번째로 ‘비밀고’란 반야심경의 마지막에 있는 “揭諦 揭諦 婆羅揭諦 婆羅僧揭諦 菩提娑婆訶(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등과 같은 다라니(陀羅尼, Dharani) 류는 번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라니란 본래 기억하여 잊지 않는 어구(語句)라는 의미였으나, 이것이 반복하여 소리 내서 읽는 진언(眞言)으로 정착하여 그 말의 의미보다 복창 행위를 통한 공덕과 신비함을 중시하는 신앙이 생겨나, 음사로서 의미를 비밀로 하는 편이 좋다고 여기게 되었다.

  두 번째로 ‘다함고’란 “박가범(薄伽梵)”과 같이 매우 많은 의미가 있는 경우 이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없어서 음사하는 것을 말한다. ‘박가범’은 원래 ‘bhagavat’의 음사로 불경에서는 석가의 존칭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이 단어에는 석가의 덕상(德相)으로서 ‘자재(自在)’, ‘치성(熾盛)’, 단엄(端嚴), '명문(名聞)', '길상(吉祥)', '존귀(尊貴)'의 의미가 있어서 번역할 때에 ‘존귀’만을 선택할 경우 다른 의미가 빠져버리고 말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음사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 ‘차방무고’란 ‘염부수(閻浮樹, 염부 나무)’ 등과 같이 인도에는 있지만 중국에는 없는 것은 음사하는 것이다. ‘염부수’의 어원은 ‘jambu’라 불리는 나무로 중국에는 존재하지 않기에 번역할 수 없는 사례다.

  네 번째로 ‘순고고’란 “보리(菩提)”나 “열반(涅槃)”처럼 이미 음사어가 정착해 있는 경우로, 선례에 따라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보리’의 어원은 ‘bodhi’로 “정각(正覺)”을 의미한다. ‘열반’의 어원은 ‘nirvana’로 “해탈”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은 번역 가능하지만 현장 이전부터 이미 음사어로 정착해 있었기 때문에 현장은 이를 그대로 따랐다.

  다섯 번째로 ‘생선존중고’란 “반야(般若)”처럼 음사어가 더 심원한 의미를 품을 수 있는 경우 불교적 공덕이나 신앙심과 관련하여 음사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반야’의 어원은 ‘prajñā’로 “구극의 지혜”를 의미하지만, 그 의미는 깊고 오묘하고 단어 자체에 공덕이 있다고 믿어서 이를 번역하게 되면 의미가 경박하게 될 염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한자로 산스크리트어의 음을 보존하는 음사어이기 때문에 의미는 통할 수가 없다. 인도 언어학은 언어의 본질을 음성으로 파악하여 표음(表音) 자체에 큰 비중을 둔 성음학(聲音學)이라면, 중국의 언어학은 문자에 의한 표의(表意)에 치중한 문자학이다. 따라서 이러한 한문과 산스크리트 문장 간의 틈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음사어라 하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사어라 불리는 것의 실체다. 다른 문자로 옮기게 되면 이들은 차용어(借用語)로서 어떤 의미에서 완전히 다른 단어가 되어, 유포 과정에서 그 의미는 완전히 새롭게 변화해 간다. 그리고 그 의미가 원어의 의미와 얼마나 가까운지 혹은 떨어져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최종적으로는 음사어도 번역어와 마찬가지로 정착하게 된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한다면 번역하지 않는 것도 실은 번역의 한 가지 방법이 된다. 서역 출신으로 산스크리트어가 모국어와도 같았던 구마라집은 산스크리트어로 먼저 불경을 이해하고 산스크리트어와 중국어 사이에서 번역의 한계를 뼈저리게 체감한 까닭에, 산스크리트어에 충실한 한역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의역으로써 전체적 의미를 통하게 하는 것에 노력하면서, 어떤 의미에서 포기하는 심정으로 음사어를 다수 이용했다. 반면 현장은 최선을 다해 산스크리트어에 충실한 한역 단어를 만들면서도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항목에 한해서는 어의를 가리고 음사하는 편이 신앙 함양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적극적인 동기에서 음사어를 사용했다. 현장은 어디까지나 번역 가능론의 입장에서 이 ‘오종불번’을 제시한 것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현장에게 이 번역 가능성 여부야말로 신앙적 명제였을 것이다. 중국 불교에서 불경 한역은 숙명이었다. 그 불경 한역을 부정하는 것은 현장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부정하는 것이며 중국 불교의 미래를 막아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리라. 따라서 그의 오종불번의 논리는 번역의 한계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번역은 가능하며 따라서 포교도 가능하다’라는 순수 중국인 승려로서의 긍지와 신앙에 기초란 것이라 생각된다.

【인용문헌】

  • 가마타 시게오(鎌田茂雄), 中国仏教史6 隋唐の佛敎』 , 東京大学出版会, 1999.
  • 기무라 센쇼(木村宣彰), 「羅什と玄奘」, 高崎直道 외편, 『仏教の東漸 東アジアの仏教思想Ⅰ』, 春秋社, 1997.
  • 무라타 츄베(村田忠兵衛), 「五種不譯是非」, 印度学仏教学研究 제24권 1호(통권 47호), 1975, pp.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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