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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번역의 역사와 그 변천(15)- 구역(舊譯)과 신역(新譯)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6. 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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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12호(통권 264호), 2021. 12, 4쪽.


구역(舊譯)과 신역(新譯)

  역경사(譯經史)에서는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344~413)의 번역은 구역(舊譯), 현장(玄奘, 602~664)의 번역은 신역(新譯)이라 한다. 구역과 신역을 비교해 보면 양자 간의 번역관과 교리 해석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예컨대 ‘어리석은 까닭에 그 과보로서 끝없는 윤회의 생을 반복하는 자’를 의미하는 “pṛthagjana”를 구마라집은 “범부(凡夫)”로 번역하였다. 구마라집은 의역으로 중국 고전 등에서 사용되고 있던 ‘범부’를 채용한 것이다. 반면에 현장은 이를 “이생(異生)”으로 개역하였다. 어원의 본래 의미는 ‘다른=pṛthag(pritak(g))’과 ‘태어남=jana’으로, 현장의 번역어는 원어에 충실한 직역임을 알 수 있다.

  또 ‘부처의 교화 대상인 존재’를 의미하는 “sattva”는 구마라집 이전 시대에는 ‘인도(人道)’, ‘인민(人民)’, ‘군생(群生)’, ‘중생(衆生)’ 등으로 번역되었으나 구마라집은 노장사상에서도 사용되고 있던 ‘중생’을 선택하였다. 노장사상에서 ‘중생’이란 식물까지도 포함한 모든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천태종(天台宗)에서는 일체법(一切法)이라는 독자적 범주에 따라 중생을 해석하여 “초목국토실개성불(草木國土悉皆成佛)” 즉 초목 등도 중생의 범주에 포함하기에 이른다.(후지이, 2003:37) 반면에 현장은 초목 등 심식(心識, 인식력과 분별력의 작용-역자 주)을 동반하지 않는 존재는 “비정(非情, 무정(無情))”으로 보고, 불교의 “sattva”는 어디까지나 “심식과 정신활동을 하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 “유정(有情)”으로 번역하였다. 이는 초목 등에는 정신이 없기 때문에 부처의 교화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인도의 사유 방식을 반영한 번역어라 하겠다.

  구역에 대한 개역의 예로는 인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석가의 십 대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수부티(Subhūti)를 구마라집은 “수보리(須菩提)”로 음역하였으나 현장은 “선현(善現)” 즉 ‘좋은(善)=Su’과 ‘발생한 것(現)=bhūti)’의 의미로 직역하였다. 또 초기 대승불교 경전인 유마경(維摩經, Vimalakīrti-nirdeśa Sūtra)에 등장하는 비말라키르티를 구마라집은 “유마힐(維摩詰)”로 음역하였으나 현장은 그 낱말의 의미에 따라 “무구칭(無垢稱)” 즉 ‘오염 없는(無垢)=Vimala’와 ‘명예(稱)=kīrti’의 의미에 따라 직역하였다. 현장의 번역이 낱말의 의미에 철저하게 충실했음을 알 수 있지만, 오히려 구마라집의 번역어가 일반적으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석가가 법화경(法華經) 등의 가르침을 설한 장소로서 유명한 영취산(靈鷲山, Gṛdhrakūṭa)을 구마라집은 “기사굴산(耆闍崛山)”으로, 현장은 이를 “길율타라구타산(姞栗陀羅矩咤山)”으로 바꿨다. 산스크리트어의 원음에 가까운 것은 현장의 번역이지만 낱말의 리듬감이나 격조, 꾸밈을 좋아하는 중국인에게 독송하기 어려운 까닭에 현장의 번역어는 정착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널리 민중에게 사랑받는 관음보살에 관해서도 구마라집과 현장의 한역에 차이가 있다. 관음 신앙의 기원은 ‘아왈로끼떼슈와라(Avalokiteśvara)’로 보살의 공덕을 설한 것인데, 이란과 서역의 민간 신앙이 기원후에 대승 불경 속에 편입되며 시작되었다. 이 보살을 구마라집은 “관찰되다=Avalokita”와 “소리=śvara”로 파악하여 ‘세상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관조(觀照)하는 보살’ 즉 사람들의 바람에 부응하여 현실적 이익을 주는 보살로서 “관세음(觀世音)”으로 번역하였다. 법화경의 한역으로 중국에서 5세기경부터 관음 신앙이 급속도로 퍼져나가, 강도가 닥쳤을 때 관음의 이름을 부르자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나, 아이가 없는 사람이 관음경을 독송하자 아들을 얻게 되었다는 등의 기적이 전해지게 되어, 관음 신앙은 질병으로부터의 회복, 부(富)나 지위, 명성 획득 등, 사람들의 다양한 현실적 이익을 위한 신앙으로 보급되어 갔다.

  사실 ‘아왈로끼떼슈와라(Avalokiteśvara)’는 산스크리트어 원전에서는 남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정법화경(正法華經)』에도 「십칠신(十七身)」의 화신은 모두 남성이었다. 간다라(Gandhara)에서 발견된 기원후 2~3세기 관음상에는 콧수염이 있어서 확실히 이 보살은 남성이었다. 그러나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서는 관음의 화신은 「삼십삼신(三十三身)」이 되어, 성별을 초월한 자비의 보살로서 사람들의 구제를 위한 우바이(優婆夷)와 장자부인(長者婦人), 비구니(比丘尼) 등의 여성으로도 그려지게 되었다. 구마라집의 한역에 의해 여성으로도 권화(權化, 화신으로 나타남-역자 주)하는 관음에 대한 관념이 퍼지게 되자 점차 항해나 어업의 수호 여신인 도교의 마조(媽祖) 신앙과 융합하여 여성으로서의 관음이 강조되기에 이르렀다.(우에키, 201:175~176) 반면 현장은 ‘관세음’이라는 번역어를 부정하고 “관찰되다=avalokita”와 “자재(自在)의 신=iśvara”이라는 해석에서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에서는 “관자재(觀自在)”로 번역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 “iśvara”가 남성 명사인 까닭에 현장은 남성으로서 ‘아왈로끼떼슈와라’를 이해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법적인 성 개념이 결여된 중국어에 이를 담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는 구마라집의 번역어인 ‘관세음’의 생략형인 “관음(觀音)”이 퍼져나가 여성 보살로서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인도의 종교 문헌에서는 찬양 표현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산스크리트어 불경에도 그 영향이 나타나서 같은 찬탄의 반복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쓸데없이 길고 번거로워(宂長煩瑣) 중국인은 이를 멀리하였다. 그런 까닭에 구마라집은 한역 과정에서 원문을 대폭 삭제하기도 했으나 현장의 번역에는 그런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현장이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번역에 나설 무렵 약 20만에 이르는 장황한 문장을 두고 역장(譯場, 번역장-역자 주)의 중국인 승려들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삭제 혹은 간소화를 현장에게 제안하였다. 그러자 현장은 일단 그들에게 동의하였으나 그날 밤 그는 낭떠러지 절벽에 매달리거나, 맹수가 달려드는 등 꿈속에서 공포를 체험하게 되었다. 잠에서 깬 현장은 공포에 떨며 삭제나 간소화하지 않고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게 하였다고 한다.(구와야마, 1981:301)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한 중국인 승려 현장의 번역어는 일부 역경승을 제외하면 중국인 사회에 수용되지 못하였음에 반해, 쿠차에서 온 도래승 구마라집의 번역어가 중국인의 감성에 친숙해져서 정착하게 된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역 불경이 사회에 침투하는 과정에서는 산스크리트어 해석의 옳고 그름, 체계화된 교리나 번역어의 통일성이라는 이성적 판단보다도 번역된 중국어의 어감이나 영성(靈性) 등 일반적인 중국인의 감수성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인용문헌】

  • 우에키 마사토시(植木雅俊), 佛敎, 本当の教え, 中央公論社, 2011.
  • 구와야마 쇼신(桑山正進) · 하카야마 노리아키(袴谷憲昭), 『人物中国の仏教 玄奘』, 大蔵出版, 1981.
  • 후지이 교코(藤井敎公), 「中國隋唐佛敎における衆生観 -天台・三論を中心に-」, 印度學佛教學研究 51권 2호(통권 102호), 2003, pp.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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