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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언어와 번역 -글을 시작하며

동아시아 불경의 번역 수용

by trans2be 2022. 3. 2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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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成田道廣(나리타 미치히로), 天理敎 海外部 繙繹課

출처: 《글로컬 텐리(グローカル天理)≫ 제11호(통권 203호), 2016.11, 8쪽.


글을 시작하며

  나는 학창 시절 인도 사상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관련 서적을 읽고 또 읽었다. 이후 점차 인도-아리아어파에 속하는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된 고대 인도의 문헌을, 번역자가 만들어낸 번역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혔다. 이후 유학을 떠나 브라만교, 힌두교, 불교 문헌을 산스크리트어로 배우겠다는 내 자신의 염원을 풀 기회를 얻었다. 한편 나는 약 20년에 걸쳐 천리교 원전(原典)이나 교리서 등을 네팔어 및 힌디어로 번역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번역서를 하찮게 여기던 내가, 바로 그 번역서를 만들어내는 입장에 있다. 인생이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태 해온 나의 연구를 되돌아 보면, 인도 사상을 배운 동기가 단순한 지적 욕구로부터, 천리교 원전의 번역에 종사하는 과정으로 변화해 온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인도나 네팔에서 천리교 전도에 도움이 되는 번역 작업을 진행하면서 해당 지역의 언어뿐 아니라 힌두교나 불교 등 인도 문화권의 고유한 전통으로부터 길러진 종교나 문화의 중층적인 이해가 필요하며, 그 이해 없이는 번역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하는 사태에 자주 직면했기 때문이다. 즉 원전 번역 작업을 하게 되면서 산스크리트어를 매개로 한 고대 인도의 문헌을 연구하는 목적이 보다 명확해졌다. 내가 천리교 원전 번역에 종사한다는 것은 마치 내 안에서 천리교 교리와 인도 사상이 접촉, 충돌, 등가(等價)를 반복하는 이른바 내재적인 이문화 접촉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모종의 긴장 상태가 계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전도라고 하는 사명을 짊어진 번역, 즉 가르침의 실천적 행위로써 번역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유구한 역사 속에서 길러진 심원한 인도 사상의 큰 너울에 휩쓸리는 일 없이, 지금까지 인도 문헌학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번역은 말과 문화의 중개자로 단순한 ‘단어의 치환’이 아니다. 번역 행위에는 번역자에 의한 부단한 노력에 의해 초래되는 새로운 의미적 요소라고도 할 수 있는 창조적 차원의 전개가 필요하다. 새로운 ‘해석’에 의한 부연과 원어에 충실한 ‘번역어’의 창조라고 하는, 자유와 책임의 "사이"에서 유연하게 배우며 의미 전달을 담당하는 존재가 번역자이다.

  종교 전도의 경우 다른 문화권에서 포교 전도를 진행하는데 원전, 교리서 등의 번역이 필요불가결하며, 이러한 인식 하에 지금까지 다양한 종교 문헌이 번역되어 왔다. 본 연재에서는 우선 번역, 특히 전도에 있어서의 번역의 위치와 가능성에 대해 검증을 계속해보려 한다. 포교 및 전도 과정에서 번역을 통해 종교적 가르침이 어떻게 수용되고 변용되는가. 이는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문제이며, 전도와 번역의 관계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는 근본적인 명제라 할 수 있다.


  어떤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텍스트를 번역할 경우, 원어가 가진 의미를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말로 치환하는 ‘등가’는 번역자의 책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 종교적 배경으로 인한 상당한 언어 간의 차이를 번역자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보완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더욱이 해석자가 어느 지평에 서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것이 달라지게 된다. 여기에 번역의 곤란함이 존재한다. 번역에 의해 특정한 종교적 진리에 기초한 교리의 전달이 이루어질 때, 그 언어 간 차이나 미묘한 위화감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데다, 특정한 전통적 가치관이나 이해에 기초한 번역자와 해석자의 시공간적 지평의 차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즉 번역을 통해 교리가 수용될 때, 거기에는 항상 변용의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도와 번역에 관하여 다양한 시각에서 고찰을 진행하면서, 인도에서 흥한 불교가 육로 및 해로를 거쳐 널리 아시아 지역에 전파되어 세계 종교로 불리게 된 경위를 불교 경전 번역의 역사 즉 '역경사(譯經史)'에서 들추어내어 불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한 한역(漢譯) 불경이 실제로 어떻게 기능하였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야스퍼스가 훗날 추축 시대(樞軸時代, axial age)라고 불렀던 기원전 5세기경,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한 구도자로부터 시작한 ‘가르침’은 점차 북인도의 갠지스강 중류 지역 일대에 퍼져나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지주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전한 ‘가르침’은 이후 인도 세계를 떠나 실크로드를 거쳐 아시아 지역으로 퍼져 나가, 불교라는 세계 종교로까지 발전했다. 그 전파 과정은 불교가 갖는 교리 개념과 사상이 서로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수용과 변용을 거듭한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고타마가 전한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구전되어 지역적인 확산과 함께 많은 언어로 번역되기에 이르렀다. 인도라는 세계를 나온 고타마의 ‘가르침’은 최종적으로 동아시아에까지 퍼져나갔다. 같은 아시아 국가라 해도 전혀 다른 문화권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불교는 변용되어 간다. 즉 언어, 사상, 전통, 습속 등이 크게 다른 중국에서 불교가 점차 중국적인 특징을 갖는 형태로 변모하였다. 불교의 동점(東漸) 과정에서 다른 문화권의 교리가 번역을 통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그리고 거기에 어떤 변용이 일어났는지를 역경사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이문화 전도에서의 번역의 의의와 교리의 수용과 변용에 관한 이해를 더해보고자 한다.

  나아가 언어 "사이"에서 자신의 신앙 실천으로 번역에 평생을 바친 '역경승(譯經僧)'이라 불리는 번역자의 존재와 그들의 번역론에도 주목하고자 한다. 약 천년에 걸쳐 수많은 역경승들이 불경의 한역에 진력하여 불교의 이식이라는 거대한 사업에 몰두하였다. 그들에게 번역 행위는 그야말로 신앙인으로서 자기 정립의 구극적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외래 종교였던 불교는 중국에서 수용되었다. 그 역사에는 역경승의 예지가 각인되어 있다. 역경사는 그동안 불교 학자에 의해 연구되고 불경 연구의 주춧돌이 되어왔다. 많은 석학들에 의해 축적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본 연재에서는 새롭게 이문화 전도의 관점에서 이 역경사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이에 더하여 필자가 지금까지 종사해 온 네팔어 및 힌디어 원전 번역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검증함으로써, 본교(텐리대-역자 주)의 전도와 번역에 관한 이해를 심화하고 싶다. 선학의 지침과 비판을 바라면서 본 연재가 원전 번역에 관한 여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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